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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주·고 3탕(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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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주·고 3탕(장명수 칼럼)

입력
1995.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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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대구의 최고기온은 40도에 육박했고, 밤 기온이 25도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전국을 휩쓸어 잠을 못잤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덥다는 비명도 고3 학생들 앞에서는 숨을 죽일 수 밖에 없다. 고3 아들을 둔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며칠전 아이가 새벽 4시에 들어 왔어요. 수능시험이 앞으로 백일 남았다고 선배들이 백일주 파티를 열어준다기에 맥주 한 두잔 마시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놀면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고, 나머지 백일동안 새 기분으로 공부하자고 다짐하는 것이 백일주 파티래요. 아직 고등학생인데 무슨 짓이냐고 야단을 쳤지만, 오죽하면 선배들이 그런 파티를 열어주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주려 할까 가슴이 아팠어요』

백일주는 거품이 있는 맥주는 피하고, 대개 포도주를 마신다고 한다. 여학생들의 백일주 파티에서는 샴페인을 한 두병 터뜨리는게 보통이다. 파티에는 이미 시험지옥을 통과한 선배들뿐 아니라 후배들도 참석하여 고3을 앞둔 스트레스를 함께 풀기도 한다.

다른 어머니는 아이에게 「고3탕」을 먹였느냐고 물었다. 시험공부에 허덕이는 수험생들에게 먹이는 보약이 고3탕인데, 한약방에 가서 고3탕을 지어 달라고 하면 알아서 지어준다고 한다. 그러나 간혹 돌팔이 의사들 중에는 스테로이드등 홀몬제를 섞어 즉각 기운이 샘 솟는 고3탕을 조제하여 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자격있는 믿을만한 의사에게 가야 한다. 고3탕은 수험생을 위한 약과 수험생의 어머니를 위한 약이 있는데, 어머니 역시 보약을 먹으면서 뒷바라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자녀들을 대학에 보낸 한 어머니는 3년전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재수생 아들을 닦달하면서 우울한 몇달을 보냈는데, 어느날 학원에 가는 아이의 축 처진 뒷모습을 보는 순간 울음이 터졌어요. 아무리 울음을 그치려해도 점점 더 심해지더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몇시간을 그렇게 울다가 진정제를 찾아 먹은후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아들도 나도 정말 미칠 것 같은 위기를 여러번 넘겼지요』

백일주를 마시고 고3탕을 먹으며 찜통더위속에 마지막 백일을 향해 뛰고 있는 수험생들, 어머니들의 결론은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교육개혁의 효과가 나타나 입시지옥이 풀릴 날은 언제일까. 잠자기도 힘든 열대야, 공부와 씨름하는 수험생을 기억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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