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인 대북제의를 하겠다던 예고와는 달리 김영삼대통령의 광복50주년 경축사에는 별다른 제의가 없다. 해마다 역대 대통령의 8·15경축사에는 국민들이 깜짝 놀랄 대북제의가 들어있는게 관례처럼 되어왔는데 이번에는 획기적인 대북제의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지금까지 역대 집권자들은 메가톤급 제의로 우리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는 일을 즐기다시피 해왔던 게 사실이다. 북한이 수용하든 말든 알바 없이 국내 정치용으로 극적 효과를 노려 곧잘 이용해왔던 것이다.
그런일이 잦다가 보니 이제는 「실현성도 없는 제의를 뭣하러 자꾸 남발하느냐」는 비판의 소리도 나왔다. 그런 핀잔에도 불구하고 금년은 광복50주년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북제의가 있을 법 하다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남북간의 이상기류로 보아 새로운 대북제의가 국민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분위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것같다.
경수로 제공협상에서 우리쪽의 자존심이 상당히 상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터에 쌀문제로 다시 국민감정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기 사건으로 한차례 분통을 터트린지 얼마 안되어 다시 쌀 배를 억류하자 대북 강경분위기가 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가 사진촬영사건의 진상도 알아보지 않고 사과하는데 급급한 인상을 주자 국민의 불만은 이제 정부의 무분별한 태도에 쏠리고 있다.
이러한 남북관계와 이로 인해 저조해진 국내분위기 속에서 맞는 광복 50주년은 우리에게 더욱 착잡함을 더해 줄 수밖에 없다. 언제쯤이면 광복이 완성되는 통일을 맞을 수 있을까. 해빙 조류가 처음 출렁댔을때만 해도 금방 눈앞에 닥칠 것같은 통일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까마득 하게만 보인다.
이런 판에 8·15를 기념하는 연례행사로 무슨 대북제의를 불쑥 내어 놓기보다는 남북간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설정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김대통령은 그래서 그런지 지난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확인한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을 다시 음미하는 선에서 대북관계 언급을 자제했다. 통일을 위해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 해결되어야 하며 관련 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도 필요하다」 「아울러 남북 기본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경수로니 쌀 제공 등으로 관계가 좋지 않게 얽혀있는 이 시점에서 남북이 함께 한반도 평화정착의 중요성을 되새겨보는 것도 8·15를 기념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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