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당시집기 그대로… 의거추모행렬 줄이어/「윤봉길의사 공원」 유품 한점없어 안타까움만중국 상하이(상해)는 지금 경제개발의 모델도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나라 잃은 선조들의 광복을 향한 눈물겨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민족정신의 현장이다.
윤봉길 의사가 일본의 상해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나리(백천의칙)대장 등을 폭사시킨 의거의 현장 홍커우(홍구)공원, 의열단의 열혈남아들이 다나카(전중의일)육군대장을 저격했던 황포 강변,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등 항일정신의 발자취가 상해 곳곳에 남아 있다.
이중 마당로 306동 4호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는 1926년부터 32년까지 김구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항일투쟁의 거점으로 사용했던 장소로 93년 4월 삼성물산의 지원으로 원형대로 복구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윤봉길의사의 의거, 이봉창 의사의 일왕행렬 폭탄투척 등 수많은 항일의거가 이곳에서 계획됐다.
3층 목조 건물로 1층은 임정 요인들의 회의·접견실과 부엌, 2층은 집무실, 3층은 숙소 등으로 재현됐는데 김구 이동녕 이승만 등 요인들의 사진과 독립신문, 당시 사용됐던 집기, 비품 등이 비치돼 있다.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조선족 복무원 차복란(22·여)씨는 『하루 방문객수가 50명 가량 되는데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어서 반갑게 맞는다』고 소개했다.
상해시 첨애지로에 있는 홍구공원(현재는 노신공원)은 윤의사가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일본군 사열대에 폭탄이 든 도시락을 던져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인 현장으로 유명하다.
1932년 4월29일 일왕의 생일인 천양절 경축행사장에서 윤의사는 유창한 일본어 솜씨로 사열대 5전방까지 접근, 폭탄을 던졌다. 폭탄은 사열중이던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나리의 숨을 끊었고 윤의사는 스물셋의 꽃다운 생애를 조국에 바쳤다.
이같은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곳엔 지난 한해동안 7백여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연일 수많은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인적도 드문 공원 한쪽구석에 서있는 윤의사 기념관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넓은 공터(24만㏊)에 「중국혁명의 아버지」 노신묘, 노신좌상, 노신 기념관, 연꽃으로 뒤덮인 호수등으로 비교적 잘 꾸며져 있으나 윤의사의 폭탄투척현장은 그 위치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공원내 영주각 앞 광장」「호수 안쪽」이라는등 설만 무성하다.
상해시는 93년 8월 공원 북쪽 한 켠에 벽돌기와 담장으로 에워싼 윤의사의 아호 매헌을 딴 매원공원을 조성했다. 또 그 안에 윤의사의 유품등을 보관하기 위해 매정까지 세웠으나 단 한점의 유품도 보관돼 있지 않고 검증을 거치지 않은 「윤봉길 의거현장」이라는 철제푯말만이 매정앞에 세워져 있을뿐이다.
상해시 연구기관인 상해사회과학원은 상해와 연관된 이같은 한국인들의 활동에 주목해 「상해한국교민사」를 정리중인데 근대 한국인들의 상해이주는 상해의 정치·사회상과 도시발달사를 반영한다고 강조했다. 상해사회과학원은 최근 연구진을 대폭 강화, 한국교민사 관련 자료 수집에 힘을 쏟고 있는데 한국측의 협조를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추이즈잉(최지응)부주임은 『우리의 작업은 한국학계의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문화 경제 생활 관련 자료가 부족해 한국 학자나 교민 후손들의 연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상하이=김병찬·김혁 기자>상하이=김병찬·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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