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진곡」이라는 시가 있다.「잔치는 끝났드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빠앍안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거두면 저무는 하늘/ 이러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끔씩 취해 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도라가는 사람들/(후략)…」
서정주의 시처럼 이제 잔치는 끝났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5만의 시민이 모여서 벌인 축제도 끝이 나고 세계를 빛낸 음악가의 노랫소리도 끝이었다. 부숴야 한다, 그냥 보존해야 한다고 말들이 많던 구조선총독부의 첨탑이 마치 잘려지는 상투처럼 철거되는 것을 정점으로 해서 이제 그 떠들썩하였던 광복 50돌의 기념잔치는 끝이 나고 말았다. 이제는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결국은 조금씩 취해서 돌아갈 때인 것이다.
그러나 잔치는 흥겨웠지만 빨간 불 사르고 돌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재가 남아 있구나. 광복이 된지 50년이 흘러 해방둥이였던 내가 지천명의 쉰이 되었어도 변해진 것은 하나도 없구나. 여전히 일본은 「왜놈」이고 우리는 「조센징」이로구나.
지난 9일 시마무라 문부성장관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70%를 넘었는데도 일일이 사죄를 하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하고, 오쿠노 전법무장관도 『일부 일본인들이 중국과 한국이 전쟁중 일본군에 의해 당한 고통에 대해 동정을 보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망언을 하는구나.
기분이 나쁠거야. 일본인들도. 시마무라장관의 말대로 전후세대가 70%가 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사죄를 하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말할만도 하지.
그러나 일본인들이여. 그대 바로 곁에 우리나라가 있음을 고마워하라. 우리도 정말 지쳤다. 당신들 망언에 일일이 분노하는 것도 정말 지쳤다. 그러나 우리 민족처럼 그대들의 지난 과거에 대해서 끝까지 물고 넘어지는 이웃이 있음을 차라리 고마워하라. 지난 과거를 직시하고 죄를 뉘우칠 때 그대들은 마침내 정신적 유아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보라.
조선총독부의 상투가 잘리고 건물이 해체된다고 해서 우리들 마음 속의 총독부건물이 그대로 사라지겠는가. 조선총독부의 건물이 광화문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우리 국민의 가슴에 응어리된 상처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그토록 죄상을 따져 묻는 우리가 어째서 15년 전에 일어났던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서로 덮어두자고 쉬쉬―하는가. 그 서슬이 퍼렇던 반체제투사들은 모두들 어디로 사라졌는가. 국회의원 한 자리 얻으려고 탤런트처럼 말쑥들 해졌구나. 용서하라니. 이제 그만 가슴 아픈 일인데 덮어두자니. 도대체 누가 누구를 용서하자는 말인가. 용서할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용서를 할 것이 아닌가. 김수영의 시처럼 「비겁한 민주주의여 안심해. 난 지금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제 와서 그 사람들을 법으로 기소하자는 말은 아니야. 법, 법이라면 이젠 신물이 나. 다만 이제 한 사람쯤 나와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내가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큰 죄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군인정신. 우리나라의 그 용감한 충무공의 후예다운 무예정신은 다 어디로 갔는가. 누구 한 사람 그렇게 뉘우친다면 국민들은 그에게 대장군의 훈장을 내릴 것이다. 아아. 삼풍백화점 붕괴도 생존한 젊은이들 세 명의 무용담으로 잔치마당으로 끝나 버리고. 우린 천재들이야. 비극을 잔치마당으로 만드는 천재들이야.
이제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총독부의 건물을 철거할 때다. 성숙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인격이 깃들 듯이 이제 우리나라도 광복 50돌이 되었으니 국가로서의 국격을 갖추어야 한다.
광복은 왔지만 해방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서정주의 시처럼 광복 50돌의 잔치를 끝내고 조금씩 취해가지고 돌아가는 이즈음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보다는 우리 내부의 망언을 더욱 질책하고 총독부보다는 우리 내부의 모순과 부패를 허물어뜨려 새로운 경복궁, 도덕과 양심이 황금으로 번쩍이며 대한국민이 하나로 통일되는 새로운 빛의 궁전을 이룩할 때인 것이다.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야말로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위대한 민족이므로.<작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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