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쁨에 넘치는 광복과 비극적인 분단이 있은지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어느 누구도 과거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물론 과거는 변화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이해될 수 있고 이해되어야 한다. 나는 여기서 한반도의 과거와 관련해 두가지의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한국의 분단은 비극적 사건(ACCIDENT)이었다. 막스 베버가 인류역사에 있어 전적으로 우발적인 요소를 강조한 것은 비록 그것이 우리가 채택하고 싶어하는 체계적인 설명과 배치되지만 옳은 자세이다.
45년에 행한 짓(38선 획정)때문에 감정상으로는 고 딘 러스크를 전쟁 범죄자로 간주하고 싶지만 어느 누구도 그 비극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이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를 별 생각없이 분할한 초강대국 역시 제국주의적 동기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다.
2.분단의 시작은 외국인이 했지만 그것을 강화한 것은 한국인들이었다. 반세기동안 지속된 한반도 분단의 비극은 분단 그 자체와 그 최초의 조치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한반도내의 두 정부가 분단을 처리한 방식에도 비극은 있었다.
독일에서는 베를린 장벽 설치이후에도 접촉이 단절되지 않았다. 독일인들은 편지를 교환하고 전화를 했으며 다른 편에 살고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송금도 이루어졌다. 독일의 양 체제는 서로를 싫어했지만 대화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일은 한반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완고하고 비타협적인데 대해서는 김일성 뿐만 아니라 이승만과 박정희에게도 책임의 일단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강렬한 증오와 철저한 단절은 결코 피할 수 없었던 숙명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이루어진 것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니 미래를 바라보자. 미래는 훨씬 넓고 또 밝아 보인다.
첫째 어느 누구도 과거 몇년동안의 급속한 변화를 부인하지 못한다. 10년전만 해도 한반도의 분단은 돌덩이처럼 굳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냉전은 종식됐다. 소련은 존재하지 않고 명목상으로만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은 한국인 투자자들의 인기있는 투자대상이 됐다.
다른 한가지의 변화는 북한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되지 않은 계획경제는 결코 더 이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없다. 남북간의 경쟁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쟁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경쟁은 없다.
냉전의 종식, 그리고 죽어가는 북한등 두가지 이유 때문에 다음 50년이 과거의 연장이 되지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나의 판단으로 통일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다.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은 어떻게 또 언제 통일이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기에는 두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그 하나는 「점진론」이고 다른 하나는 「붕괴론」이다. 어느 쪽 견지에서 보더라도 북한의 미래는 없다. 강경노선을 유지한 채 개혁을 거부한다면 배고픈 인민들의 봉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북한이 개방하고 경수로 원전을 건립하며 남포에 대우측 기술자를 받아들이는등 남측과의 경협을 확대해 나간다면 경제는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체는 불안해진다. 오직 「은둔의 왕국」만이 가혹한 김부자 신화를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 필자의 예측이다. 낙관주의자들은 쌀지원, 경수로사업등 최근의 진전에 주목하며 남북이 새로운 유교적 맏형― 아우관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이 잘 진행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불가측성이 남아있다.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그 하나이다. 그가 권력을 절대적으로 휘두를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개방이냐 강경고수냐 하는 선택보다는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유일한 선택은 절대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쌀은 받으면서 어부와 목사를 납치하는 이율배반적 행위는 지속되기 어렵다. 남한은 물론 전세계 어느 국가도 깡패같은 국가 또는 「받기만하고 주지는 않는(주체정신의 진정한 의미이다)」 자에게 무한정한 인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불량배 정권의 수명도 영구적이지는 않다. 구세대 강경파들은 2010년까지는 모두 사라지고 김용순 서기같이 젊고 현명한 지도자들이 평화를 구축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독일의 예는 공산주의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또 서쪽의 「자린고비」와 동쪽의 「거지」간에 갈등이 있는 독일의 정치사회적 교훈도 있다. 남북접촉에서 빚어질 갈등을 극복하려면 세심한 정책적 배려도 있어야겠지만 교회와 이산가족등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50년후면 97세인 필자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이미 오래전에 평양을 거쳐 부산까지 가 봤을 것이다. 또한 2005년께 주말을 이용해 금강산 구경에 나선 「김씨」는 옛 휴전선을 넘으며 아이들에게 『한때 이곳에는 철조망이 놓여 오도가도 못했다』고 얘기해줄 것이다. 그 때 아이들은 『거짓말 마세요, 아빠』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약력
▲영국 리즈대학 교수(한국학과 과장) ▲월간 「North Korea Report」(구 Korea Countdown)주간 ▲최근저서 「김일성 이후의 북한」「통제된 붕괴」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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