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에 듣는다/“민족정기 세워야 국가도 선다”/망국고통 교훈 모든 분야 스스로의 힘키워야/급격한 통일 부담… 우선 북 경제회생 중점을민족이 새 삶을 찾은지 50년. 구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작업이 시작되고 중국 중칭(중경)의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가 복원됐다. 광복 50년의 의미와 앞으로 우리 민족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광복군과 임정요원으로 활동했고 학자와 교육자로 부당한 권력에 꺾이지 않으며 살아온 김준엽(75) 사회과학원 이사장의 목소리를 들어본다.<편집자 주> <대담=임철순 문화1부장>대담=임철순> 편집자>
―50주년 광복의 날을 맞은 소감을 들려주십시오.
『독립운동 하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선열들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리고 중칭의 임정청사가 복원되고 구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게 되어 여간 기쁘지 않습니다. 헐면 안된다는 사람도 더러 있는가 봅니다만 일제탄압을 대표하는 그 건물을 지금이라도 없애게 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돌아보면 75년을 사는 동안 일제하 25년이 광복후 50년에 비할 바 없이 길고 고난스러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말기 일본군대를 도망쳐 나와 유격대활동등으로 고생하면서 겉으로는 일본만을 욕했지만 속으로는 조상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고 늘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평가를 받을 세대가 되었는데 2차대전후 제국주의 통치에서 벗어난 다른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는 70점 정도의 수준은 되지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대국에 둘러싸인 현재의 국제상황을 보면 망국의 세월을 거울삼아 우리의 안전을 우리 힘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하게 됩니다』
○친일파 문제 해결못해
―광복 반세기동안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해왔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중에서 가장 미흡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족정기가 바로 서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지 못한 점입니다. 우리는 건국초부터 친일파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팔고 동족을 배반한 것만큼 큰 죄가 없는데 이를 올바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권의 도덕성에 문제가 생기고, 쿠데타 정치협잡등의 문제도 가볍게 생각하게 된 것같습니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매국자들에 대해서는 법적 시효를 두지않고 단죄를 하고 있으며, 우리를 제외한 식민통치국가들은 해방후 대부분 애국인사들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강대국의 포위 속에서 언제 과거와 같은 위기가 또 닥칠지 모르는데 민족정기가 바로 서있지 않다면 누가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지키겠습니까』
―세계 모든 나라가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어떤 목표 아래 매진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분단된 조국의 재통일, 민주적 국민국가 완성,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 성취, 복지사회 구현, 새로운 한국문화 창조등 5가지를 국민적 목표로 삼아 건국후 50년동안에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경제성장, 문민정부의 등장, 예술인의 세계진출, 올림픽 개최등 일부 도달한 점도 있는데 앞으로는 여기에 더해 선진국 진입과 그에 걸맞는 국제적 의무의 이행,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 건설등 두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군사·정치·경제·문화를 포괄한 총체적 국력배양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문화와 교양이 있는 민족이 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경제가 부강해도 높은 문화적 배경이 없는 나라는 천대받습니다』
○전통문화 재창조해야
―세계에 내놓을 한국의 문화는 어떤 모형이어야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선진 외래문화를 받아들여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선진 과학기술을 수용, 소화하면서 우리에 맞게 재창조해내야 합니다. 전통문화 중에서는 유교의 영향이 큰데 유교의 종적 질서를 서양의 횡적인 민주주의 이념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효는 종적 질서인데 이것에 서양의 횡적 질서의 이점을 수용해 종적 도덕관에 배어있는 권위주의 의식을 없앤다면 좋은 전통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의 미래를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광복 50주년의 시점에서 일본, 일본인들에 대해 주문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일본의 경제력은 계속 커나갈 것으로 봅니다. 동시에 군사력 강화라는 문제를 두고 일본은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는 힘을 바탕으로 또 한 번 아시아를 지배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다른 나라와 화해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 여러 국가에 저지른 죄악에 관해 일언반구 없이 핵폭탄을 맞은 피해국이면서 평화주의국인 것처럼 행세하거나, 역사를 왜곡하고 다른 아시아국가를 멸시하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사력 강화와 더불어 최근 일본 우익세력의 움직임은 구한말의 동북아 형국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관을 가지고 국제협력이라는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상호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힘에 뒤지지 않을 국력을 키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군개혁 가장 돋보여
―정부의 개혁작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로운 도전에 맞게 대응하는 국민이 역사를 이끌어 나갑니다. 변화에 뒤떨어져서는 안되며 그런 뜻에서 개혁은 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치 내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개혁이라고 할 때 문민정부의 개혁작업은 긍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군개혁이 우선 잘한 일이라 봅니다. 또 대통령이 직접 검소한 생활을 하고 정치자금등과 관련한 물의에 휘말리지 않은 것도 깨끗한 정권의 본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금융실명제 실시, 부동산투기 억제, 관권·금권이 가장 적었던 선거를 통해 숙원이었던 지자제를 이루어낸 것, 언론자유 신장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다만 개혁이 물량이나 형식등 양보다는 내용과 질의 문제를 생각해서, 또 대통령 혼자가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동참하는 속에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가장 큰 민족적 과제는 통일입니다. 통일을 위한 준비를 말씀해주십시오.
『남북통일 이전에 완전한 독립은 없습니다. 공산권의 몰락과 동서독의 통일을 보면서 이제 우리의 통일도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통일한국의 상을 올바로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목표를 향해 방법을 강구해나가야 합니다. 우선 북한의 개방이 필요합니다. 곤란에 처해있는 북한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인권문제도 함께 제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은 언제 붕괴될지 모릅니다. 남한의 20분의 1 정도에 머무르는 북한의 경제형편으로는 급격한 통일은 남북 서로에게 큰 부담을 만들어냅니다. 통일 전에 북한이 경제를 끌어올리도록 여러 방법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통틀어 말하면 통일을 비롯한 모든 문제는 우리가 역사의식을 갖고 총체적 국력배양을 해나감으로써 이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정리=김범수 기자>정리=김범수>
□약 력
▲1920년 평북 강계 출생 ▲44년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갔다 탈출, 광복군·임시정부 활동 ▲49년 중국 국립 중앙대대학원 수료 ▲49∼82년 고려대 교수, 82∼85년 고려대 총장 ▲88년 사회과학원 이사장(현) ▲89년 아주대 이사장(현) ▲저서 「중국공산당사」「한국공산주의 운동사」「장정」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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