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외증조부 묘서 흙가져와 뿌려14일 하오3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순국선열묘역 이위종 열사의 위패앞에서는 이제 막 중년을 벗어난 파란눈의 이방인 루드밀라 예피모바(59)씨가 한줌의 흙을 정성스럽게 뿌리고 있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이열사의 부친 이범진 대한제국 러시아공사의 묘역터에서 떠온 흙이었다.
이열사의 외손녀인 예피모바씨는 친지 30여명과 함께 제단에 흙을 뿌리면서 『외할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외증조부의 묘소자리에서 흙을 떠왔지만 두 분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열사의 유해와 묘소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데다 이공사의 묘소 마저 도시계획의 여파로 사라져 이제는 단지 표지만 남아있다고 예피모바씨는 전했다. 모스크바에서 화학기사로 일하는 예피모바씨는 『어릴적 어머니로부터 외증조부와 외조부의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열사는 1900년 러시아공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열사와 함께 고종의 밀사로 파견됐다. 이열사는 23세때인 1905년 러시아귀족 출신인 17세의 엘리자베타 놀켄과 결혼, 세딸을 두었고 둘째딸인 니냐가 예피모바씨의 어머니이다.
1910년 한일합방후 이공사는 일본의 압력속에서도 자비로 5년여동안 외교활동을 계속하다 끝내 자결했고 이열사는 그뒤 블라디미르사관학교에 입학, 제정러시아의 장교로 제1차세계대전에 참전, 1917년 전사했다.
국립묘지 참배를 마친뒤 예피모바씨는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릉을 찾아 흙을 단지함에 넣어 묻었다. 이곳은 광평대군의 18대손인 이공사 집안의 선산. 친지들은 이공사와 이열사의 가묘와 흉상을 이곳에 세우기로 했다. 『러시아에 돌아가면 계속 외조부의 유해를 찾는데 온 힘을 쏟겠다』는 말과 함께 예피모바씨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권혁범 기자>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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