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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문화 살찌워 「정신적 배고픔」 씻자/조성진(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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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문화 살찌워 「정신적 배고픔」 씻자/조성진(특별기고)

입력
1995.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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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대형참사속 삶에 대한 새시각 싹터/「가치있는 것」 보여줄 예술인의 노력 필요우리나라의 광복은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온 것이므로 1945년을 계기로 사실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의 변혁이 있었고 특히 서구에서는 전쟁에서 받은 피해의 복구와 더불어 문화의 복구도 활발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나치정권으로 인해 문화적으로 몇십년간 낙후되었던 독일은 전후에 이를 만회하고자 온갖 정력을 쏟았다. 50년대에 이미 현대음악을 이끄는 나라가 된 독일은 이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라인강의 기적」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우선 오페라부터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전후 정치적인 혼란이 있은지 얼마 안 있어 산하가 피로 물드는 전쟁을 치러야만 했고 이로 인해 문화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배부터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이고 보니 문화에 대해서는 전후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에 와서야 겨우 관심을 갖는 듯한 느낌이다.

관객과 더불어서만 생명력을 갖는 「공연예술」의 변천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쩐지 「배고픔의 역사」와 관계있는 듯이 보인다. 광복이후 초창기 예술인들은 고픈 배를 움켜쥐고 연주와 연기를 하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 이들은 일제말기의 암울한 시기도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사실은 이런 「예술관」은 일본이 문화를 개방할 때 먼저 받아들였던 독일 후기낭만주의의 변형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예술을 지키겠다는 안간힘을 쓰면서 정열로 버티던 초창기 예술인들의 희생적 작업이 없었던들 그나마 오늘날의 성과도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반면에 이들의 작업에 동감할 수 없는 평범한 다른 「배고픈」 사람들은 관객층을 형성할 수 없었고 자연히 무대 위의 사람들의 자존심과 우월감은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잘 살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 60년대 중반부터이고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경제적 압박감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관객동원이 어느 정도 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이며 특히 음악인구가 늘어났고 민간 오페라단들이 생겨났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몹시 경직되었던 시기가 지속되면서 문화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민족문화에 대한 자존심을 키운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형적인 국수주의를 낳기도 했다.

이제 문민정부시대를 맞아 경제적 정치적 속박을 벗어난 듯한 우리는 문화에 눈돌릴 때라고 여기고 있으나 그동안 너무 대비를 하지 못한 느낌이다. 서양이나 일본의 대중문화에 의연히 대처하지도 못하고 배고픈 시절의 한을 푸는 듯 번 돈을 마구잡이로 소비해도 문화에는 아직 인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낙관적으로 볼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잇따라 일어나는 대형사고는 우리에게 심한 허탈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무슨 고름이 터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런 과정이 있고 나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도 있을 터이고 삶을 가치있고 풍부하게 할 방편으로서 돈을 벌기만 할 것이 아니라 문화에 투자해야 하리라는 의식들이 조금씩 생기는 것같다. 재정적인 밑받침의 희망이 보일 때 그동안 태만했던 예술인들은 가치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를 분주히 해야 할 것이다.<예술의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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