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선 사진 14장과 쌀 맞바꾼 셈/「남 북쌀채널」 신뢰성 잇단 타격북한이 13일 쌀수송선 삼선비너스호를 송환함으로써 쌀지원 합의를 파국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던 이 선박의 억류사건은 발생 11일만에 일단락됐다.
정부는 이 사건을 『돌출적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우발성을 강조하면서 『그 이상으로는 파장을 확대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쌀지원과 관련된 대북정책 구도 전반에 미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결코 일과성 사건으로 덮어둘 수 없는 결정적인 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북한측은 삼선비너스호를 송환함으로써 무상지원된 쌀 15만톤에 대한 부채를 모두 탕감하겠다는 자세다. 북측은 이날 중앙통신 보도문을 통해 『우리측이 취한 관용은 깊은 「동족애와 인도주의적 입장」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우리측의 쌀지원 발표문 구절을 그대로 인용, 이같은 의도를 시사하고 있다.
우리측에 통보된 바에 의하면 이양천 항해사는 선실에서 청진항을 14컷 촬영한 것으로 돼 있다. 그렇다면 「쌀 15만톤」과 정보가치가 없는 「사진 14장」을 맞바꾸 게 됐다는게 이번 사건의 귀결인 셈이다. 쌀 지원이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측은 이를 계기로 남북 당국자회담을 계속하면서 경제공동위 재개등 대화채널의 격상을 시도하는등 부수적인 대북관계 개선 효과를 노려온게 사실이다. 8·15를 즈음해서는 이를 바탕으로 보다 획기적인 대북제의를 준비해왔다. 북한측으로서는 이같은 우리측의 적극적인 관계개선 자세가 부담스러웠지만 쌀지원을 계속 받고 있었으므로 수세적인 입장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북측은 이항해사의 사진촬영사건을 십분 활용, 이같은 수세적 위상을 완전히 반전시키고 우리측의 제의공세를 견제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이석채 차관의 전문을 통해 나머지 쌀 지원문제에 대한 담보를 얻어냄으로써 나머지 우려도 불식시키는등 한 사건으로 여러 현안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다.
더욱이 북측은 이번 사건 해결과정에서 지난 6월 인공기 게양사건 때 보낸 「사과전문」에 대한 수지도 맞추게 됐다. 정부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보낸 우리측의 전문은 당시 전금철이 보낸 것과 엇비슷한 수준이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달 2차회담을 마친뒤 이차관은 『우성호의 조속송환을 약속받았다』고 발표했다. 3차회담이 개최될 경우 북한측은 나머지 쌀지원에 대한 부담을 덜고 우성호 송환등을 카드로 활용하면서 보다 홀가분하게 추가 쌀지원을 요구하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측으로서도 이제 3차회담에서 추가 쌀지원에 응하게 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으며 대화형태 격상등에 대한 의욕도 감퇴하게된 분위기다. 어수선하게 시작된 「남북 쌀채널」은 마지막까지 혼란속에서 1개월반만에 생명을 다해가고 있는 것같다.<유승우 기자>유승우>
◎북 전달 이석채 차관명의 전문
이석채 재경원차관 명의로 12일 북한측에 전달된 전문내용은 다음과같다.
『나는 삼선비너스호 1등항해사 이양천이 귀측의 법을 위반하고 청진항을 촬영해 물의를 일으킨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입니다.
또한 제1차 북경협상에서 합의된 쌀협력사업은 계속적으로 이행될 것이며, 이와 함께 이양천 1등항해사를 포함한 전 선원과 선박을 조속히 돌려보내주기를 바랍니다』
◎선박송환 타결 의문점/북에 「사진촬영 고의성」 인정했나/“14장 물증확보” 북 주장 사실인가
삼선비너스호의 송환타결 과정은 대북 쌀지원과 관련해 있었던 다른 협상과 마찬가지로 몇가지의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송환협상 타결이 베이징(북경)에서 김형기 통일원 정보분석실장과 북한의 이성덕 대외경제협력 추진위 참사간 남북 실무대표접촉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발표하고 이석채 차관 명의의 대북전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실제로 양자간의 물리적 접촉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협상은 또 다시 비공식 루트를 통한 막후접촉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동원된 채널은 홍지선 대한무역진흥공사 북한실장과 삼천리총회사간 접촉, 베이징 주재 남북대사관 관계자간 접촉등으로 알려졌다.
막후 이면거래와 관련된 의문중 우리측이 이양천 항해사 사진촬영의 계획성·고의성을 인정했는지 여부가 가장 관심을 끈다. 10일밤부터 시작된 「남북한 접촉」은 지난 11일하오 북측이 우리측 전문에 「계획적 정탐행위」를 인정하는 구절 삽입을 요구해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공개한 이차관의 전문에는 계획성 여부에 대한 언급자체가 없어 비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번째 의문은 이씨의 촬영이 과연 개인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냐는 점. 북측은 그가 선실에서 소형카메라로 청진항을 14컷 촬영했으며 물증도 확보했다고 통보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념사진 촬영같은 개인적 취향과는 거리가 먼 행위다.
더욱이 삼선해운은 대북교류에 경험이 많은 회사이며 이씨는 선원의 차석급으로 두차례 사전교육을 통해 개인소지품을 정박전에 모두 맡기도록 지시받았던 사실이 밝혀져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정부는 선박 귀환후 『반드시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실무차원의 실책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유승우 기자>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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