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50년의 우리 역사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급속한 사회변동의 연속이었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 적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동족간의 전쟁, 반복되는 정변, 유례없는 고속 경제성장 등을 불과 한평생에 겪었으며 이때마다 적응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정신무장을 요구받았다.그동안 국민들의 의식세계는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 한국적 요소와 서구적 요소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뒤얽히며 복잡한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면세계를 파악하기도 어려우며 더욱이 많은 외국 식자들은 한국인들의 의식세계가 너무나 난해한 것이어서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토로를 했다.
이처럼 복잡한 한국인들의 의식세계에서 그래도 가장 핵심적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도덕적 생존주의일 것이다. 이러한 생존주의는 가족단위의 생존 및 계층상승 노력, 지역공동체의 상부상조를 원형으로 했지만 나중에는 혈연, 지연, 학연 등 다양한 연고관계를 기초로 한 정치·경제·사회적 보호와 지원의 관행으로 확산되었다.
도덕적 생존주의는 전쟁, 정변, 도시화, 산업화 등의 와중에서 정치질서와 사회경제적 제도가 만성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족, 동향, 동창 등의 인연이 닿는 사람이면 본능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려는 태도에서 발달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되는 사정은 웬만한 한국인들에게는 차라리 보편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생존주의는 격동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런대로 적응하고 나아가 새로운 성취를 이루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가족의 집단적 생존 및 지위상승욕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적 교육투자를 가능케 했고 나아가 인적 자원 하나로만 이룬 기적적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그리고 지연이나 학연도 많은 유능한 인재 발굴과 지원의 계기가 된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도덕적 생존주의는 한국인들의 생존과 발전의 의식적 기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근자에 이르러는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질서의 확립에 가장 핵심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다. 선진사회질서와 공동체문화, 나아가 정치환경을 조성하는데 심각한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과거처럼 혈연, 지연, 학연을 기준으로 배타적인 이해관계를 갖는 그러한 사회적 상황에 있지 않다. 편협한 연고관계를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사회활동은 발전의 기초가 되기보다는 퇴보의 원인이 될 것이다.
광복50년을 맞고 21세기를 준비함에 있어, 한국사회를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공동체로 만들어 역사발전의 기틀을 다지는데 모든 국민이 동참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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