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례상납·사업권대가 “공공연”/전담자두고 수억∼수십억 「정권」 전달『87년 대선당시 1천3백억원을 노태우씨에게 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93년11월 정일권 전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밝힌 말이다. 이는 92년1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의해 어느 정도 밝혀진 기업과 정치자금과의 관계를 재차 확인시킨 계기가 됐다.
기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정명예회장은 당시 『역대 대통령들에게 돈을 줬다. 정권마다 규모는 달랐다. 대개 추석과 연말에 20억∼30억원씩을 건넸으며 90년에는 마지막으로 추석에 50억원, 연말에 1백억원을 줬다』고 말했던 것.
결국 재벌랭킹 1,2위그룹의 총수가 이 정도의 돈을 청와대에 건넸다면 나머지 그룹들도 규모에 따라 상당금액의 돈을 전했을 것이란 예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정치와 돈, 정권과 재벌은 길지 않은 우리 기업사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비리의 온상이다. 정치자금을 잘 활용해 하루아침에 거대 기업의 대열에 올라선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에 밉보여 일순간에 문을 닫는 기업이 있는 것이 우리나라 특유의 현실이었다. 정계는 돈을 먹고 재계는 정권을 등에 업고 몸을 불리는, 돈을 매개로 한 정계와 재계의 순환고리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사에 하나의 정형처럼 굳어진 것이다.
정치자금은 비단 청와대에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거물 정치인은 물론이고 청와대와 줄이 닿는 실력자,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등 우리 사회에서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층에는 예외가 없다. 돈은 총수가 직접 움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업의 비자금 전담임원들을 통해 전달된다. 명절때 정례 상납이 있는가 하면 큰 사업을 따내는 반대급부로 전달되기도 한다.
정치자금은 정권을 달리할 때마다 나름대로 조성방식이나 규모등이 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공시절에는 주로 도입한 차관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관지원을 받는 기업이 지원금의 5%가량을 리베이트형식으로 정치권에 공식 제공했다는 것이 정설로 돼 있다. 5공시절에는 청와대에 대한 정기상납이 있었으며 골프장 인허가등 각종 인허가와 대형 공사권 낙찰과정에서 건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5공때는 특히 일해재단성금이나 새마을성금등이 반강제적으로 조성되기도 했던 것으로 5공청문회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5공의 정치자금 조성규모는 7천억원을 넘는다. 『재벌랭킹 7위였던 국제는 새마을성금으로 3억원을 냈는데 이는 성금랭킹 30위였다. 대부분 그룹들이 7억원 이상씩을 냈고 연합철강을 인수한 동국제강은 새마을성금과 심장재단기부금을 합쳐 무려 30억원을 냈다』 국회 청문회에서 양정모 전 국제그룹회장이 정치자금을 적게 낸 괘씸죄로 간판을 내리게 됐다면서 밝힌 말이다.
6공의 정치자금은 각종 사업 인허가과정에서 시끄럽게 불거져 나왔다. 수서사건이 그렇고 새정부 들어서 밝혀진 율곡사업이나 동화은행비자금사건등이 모두 정치자금과 관련된 사건들로 기록되고 있다. 이같은 정치자금은 대부분 청와대로 집결돼 정권별 대통령들이 조성, 사용한 정치자금의 규모는 최소 6천억∼7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얼마만한 자금을 남겨놓고 있느냐 하는 것이 이번 4천억원 비자금설과 관련한 세간의 궁금증이다.<이종재 기자>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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