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벗은 전주” 상황 급반전/현정권 일단 부담감 감소될듯/검찰조사·5공쪽 대응에 주목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이 제기한 「전직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설」파문이 또한번 크게 반전되고 있다. 서전장관측이 검찰출두에 앞서 마련한 「발언경위서」에서 자신에게 말을 전한 인물의 신원을 밝히며 『문제의 돈은 전두환전대통령의 친인척 소유로 알고있다』는 요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항간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측에 강한 의구심을 표시했던 것에 비춰볼때 이같은 진술은 사안의 물꼬를 전혀 다른 곳으로 트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전주―대리인―중개역―서전장관」으로 이어진 얘기의 전달과정에 대한 궁금증도 일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이번 파문의 성격과 의미도 상당부분 변화될 수밖에 없게됐다. 사실 서전장관이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 『내가 아는 사람을 통해 비자금의 실명화과정에서 선처를 요청해온 진영이 두 전직대통령중 한사람임은 분명하다』는 발언이후 초점은 두가지로 모아졌다.
첫째는 당연히 전전대통령측과 노태우 전대통령측 중 과연 어느쪽이 문제의 당사자냐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의혹의 시선은 처음부터 노전대통령쪽으로 향했다. 현정부출범이후 노전대통령측 비자금에 대한 2∼3차례의 검찰수사가 진행돼 5백억원대의 돈을 확인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또 비록 노전대통령이 7일 방미길에 오르며 『어처구니 없는 작태』라고 혐의를 일축했지만 그동안 부인강도면에서 전전대통령측이 훨씬 강했던게 사실이다.
아울러 비자금을 추적해온 야당의원들은 새로운 비자금규모까지 제시해가며 줄곧 노대통령측을 지목해왔다. 심지어 민자당내에서 조차 『현정권과 돈을 놓고 협상할 위치에 있는 쪽이 누구냐고 생각해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라는 말도 공공연했다.
하지만 서전장관측의 진술이 이같은 관측을 뒤엎는 것으로 나타남으로써 앞으로의 상황전개에 따라 이번 파문으로 인한 두 전직대통령의 입지와 도덕성은 1백80도 다른 국면을 맞게됐다. 서전장관측이 『문제의 돈이 전전대통령 본인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소 여백을 남겼고 노전대통령측의 비자금보유설이 이번 사건과 관계 없이 여전하지만 일단 「가려져있던」 얼굴이 드러남으로써 사태는 한단계 진전된 셈이다.
이와함께 또 하나의 중요 관심은 선처를 요청해온 쪽이 어느 진영이냐에 따라 정국파장이 판이하게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현정권과 선이 닿아있는 노전대통령측이 당사자로 밝혀질 경우와, 현정권과의 인연이 덜한 전전대통령측이 연루될 경우의 사태진전이 현정권에 안길 부담은 양상이 다를 것』이라는 분석이 적잖았다. 야권이 노전대통령을 집중겨냥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또 여권핵심부가 이번 사안의 처리에 고심해온 것이나 서전장관을 전격경질한 것도 같은 배경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떻든 서전장관이 『김일창이라는 지인을 통해 전해들은 비자금의 주인이 전전대통령의 친인척』이라면서도 전전대통령의 직접적 관련설은 부인해 이제 공은 검찰조사와 5공쪽의 대응으로 넘어갔다.
이처럼 서전장관의 발설로 제기된 「비자금설」의혹은 「경위서」를 통해 노전대통령측으로부터 전전대통령측으로 넘어가는 듯하다. 그렇다고 파장자체가 소멸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전장관이 앞으로 검찰조사과정에서 또다시 새로운 내용을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전·노씨측이 보유한 비자금의 실체여부와 후속대응은 또다른 문제를 낳을수 있기 때문이다.<이유식 기자>이유식>
◎경위서 「전주확인」 배경 뭘까/고도의 “정치게임 묘수” 분석/노씨측에 의혹쏠릴땐 무반응·침묵/파문확산되자 석연찮은 「방향」 전환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경위서」를 계기로 전직대통령 비자금설의 당면대상이 일단 6공에서 5공으로 뒤바뀌며 비자금설의 실체를 둘러싼 세간의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물론 서전장관의 경위서가 실체적 진실을 담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 첫발언이 문제가 돼 어쩔 수 없이 전해들은 얘기를 밝히면서도 직접적으로 전전대통령을 겨냥하는 것은 피했다. 그러나 이번 파문이 내포한 정치적 민감성을 감안할 때 경위서의 또 다른 행간도 추론해볼 수 있을 것같다.
우선 지난 3일 파문이 시작된 이후 계속 노태우 전대통령쪽에 의혹의 시선이 쏠렸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이 거의 무반응으로 일관해오다 뒤늦게 다른 방향을 지목한 점을 들 수 있다. 경위서내용에 신빙성을 두면서도 『과연 전직대통령 비자금설의 진상을 완전히 포괄했느냐』는 지적은 여기서 비롯된다. 요컨대 경위서는 보기에 따라 고도의 정치적 게임을 염두에 둔 여권핵심부의 「묘수」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전대통령측은 88년 6공정부 출범이후 여론의 도마에 올라 5공청문회에 이은 백담사행등을 감수해야 했다. 전전대통령은 재임기간중 정치자금확보사실을 시인하고 이 중 일부를 국가에 헌납하기도 했다. 반면 노전대통령측은 이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물론 6공 후반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폭로로 정치자금 모금사실이 일부 드러나기는 했으나 여론의 심판대에 오르지는 않았다. 이번 파문이후 노전대통령측에 의혹의 시선이 집중됐던 배경에는 이같은 사정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비자금설의 당사자가 노전대통령일 경우 곧바로 현정권의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점도 서전장관 경위서의 전후를 따져보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6공의 정치자금문제는 현여권의 탄생과 맥이 닿아있는 뇌관』이라는 견해가 강하게 제기돼왔다.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설이 사실이라 해도 3당합당의 태생적 한계때문에 이를 파헤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상당했다.
하지만 서전장관측이나 여권관계자들은 『경위서를 놓고 정치적 고려운운하는 것은 문제를 한참 잘못짚은 얘기』라고 일축하며 『경위서는 얘기를 전해들은 과정과 서전장관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전후사정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경위서에서 밝힌 내용은 이번 파문의 미로를 헤쳐나가기 위한 「고난도 게임」의 시작』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나의 가정이긴 하나 서전장관이 전해들은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6공보다는 부담이 적은 5공쪽으로 여론의 시선을 유도해 사건을 조기수습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정광철 기자>정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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