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중 한사람이 4천억원의 가·차명계좌를 갖고 있다는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발언에 대해서 법무장관이 철저한 조사를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잘 안될 걸요』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면서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 야당 정치인들 중에도 성역없는 수사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신문들은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을 「판도라의 상자」, 또는 「지뢰밭」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을 파 헤치면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재수없이 파편을 맞아 쓰러지는 사람도 적지 않을것이라는 비유다. 정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인물일수록 다칠 확률이 높다. 여·야 지도자들을 같이 조사해야 한다느니, 야당에도 얼마가 흘러들어 갔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것은 정치공세적인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검은 돈의 침투범위와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결국 검찰은 서석재씨를 불러 발언경위를 듣고, 그의 발언을 해명하는 적당한 선에서 조사를 끝낼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4천억 가명계좌가 사실이라해도 실제로 찾아내기 힘들뿐더러 찾아낸다 해도 현재의 권력자들에게 이롭게 작용할 전망이 없는데, 검찰이 왜 무리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끝까지 비자금을 추적하여 막대한 규모와 조성경위, 그간의 사용처가 드러날 경우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걷잡을수 없는 정국혼란이 올텐데, 그런 혼란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힌다는것은 TV드라마에나 나올 얘기라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서석재씨가 어떻게 자신의 발언을 뒷받침할지가 관심거리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처음에는 『술자리에서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전했을뿐』 이라고 발뺌했으나, 다음날에는 『개혁저지 세력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발언이었다』고 다시 자기 말을 뒤집었다. 그는 말 뒤집기를 계속하지 말고 이제라도 공인다운 성실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세상사람들이 입으로는 「공자 말씀」을 주장하면서 속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이중성, 그 씁쓸한 좌절감은 지난 시대의 유물인데, 아직도 그런 이중성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아직 청산해야할 과거를 청산 못한것이 분명하다. 4천억설이 그런식으로 무책임하게 터진것도 보통일이 아니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잘 안될 걸요』라고 미리 코웃음치는 분위기도 매우 우려할 사태다. 정부의 딜레마를 이해할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것은 지금은 「신한국」이며, 『잘 안될 걸요』가 전처럼 쉽게 넘어가기는 힘들것이라는 사실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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