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포장자 어떻게 선정했나/가족들 신청위주방식 탈피 보훈처 자체조사/관련문헌·신문기사 등 통해 2만1천여명 심사/6·10만세 운동주도 문창모씨 등 생존자는 28명광복 50주년을 맞아 새로 포상을 받는 1천4백여명의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처가 자체 조사를 통해 선정했다는 데 뜻이 있다.
지금까지는 가족등에 의한 신청위주의 심사방법으로 포상을 해왔으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정부가 적극 나서 독립운동 관련 각종 문헌과 신문기사등을 통해 포상 대상자를 대대적으로 찾아 냈다. 또 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였던 러시아등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가 상당수 포함된 것도 이번 포상의 특징이라는 것이 보훈처의 설명이다.
포상자 명단중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이동휘 선생이다. 이선생은 아버지 이발 선생을 비롯해 큰딸 인순(1893∼1919), 둘째딸 의순(의순·1891∼1945), 큰사위 정창빈선생(미상∼1920)등 4명과 함께 포상자로 선정됐다. 이동휘선생은 그동안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공식적인 정부 포상을 받지 못했다. 대한자강회를 설립하고 상해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냈으나 최초의 한인 사회주의 단체인 「한인사회당」을 창설하고 「고려공산당(상해파)」을 결성했던 배경 때문이다.
이선생 외에 상해임정 의정원 의원과 조선공산당 만주부 집행위원을 지냈던 계봉우 선생(1880∼1959)도 독립장을 받는다. 따라서 이들은 정부의 포상을 받는 첫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기록되게 됐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지금까지 이동휘선생은 가족등의 신청이 없어 포상을 하지 못하다 이번에 발굴작업을 통해 선정했다』며 『조국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판단에서 포상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이번 작업에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따로 분류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공산주의 목적으로 항일운동을 한 인물은 원칙적으로 포상을 보류했다』고 덧붙였다.
보훈처는 이동휘선생의 포상을 계기로 다른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포상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유족과 학계를 중심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포상자 중에는 만주에서 통의부 위원장등을 지낸 채상덕 선생(미상∼1926)이 대통령장을, 범어사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법린 전문교부장관(1889∼1964)이 독립장, 군자금 모집등을 했던 현기정 선생(1878∼1922)이 애국장을 각각 받는다.
또 고 김홍일 장군의 부인으로 상해 한인애국부인회 집사등을 지낸 최서경 선생(1902∼1955)이 애족장을, 여성 독립군이었던 박차정 선생(1910∼1944)이 독립장을 받는다.
포상자 가운데 생존 유공자는 광복군이었던 김광석(77)선생, 제2의 6·10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문창모 의원(88·신민당)등 28명이며 여성 유공자는 26명이다. 포상자들은 모두 본인이 직접 6개월 이상 독립운동에 참여했거나 그 때문에 3개월 이상 옥고를 치렀다.
62년부터 우리정부가 독립유공자 포상을 실시한 이래 지금까지 모두 6천4백89명이 각종 포상을 받았으나 한꺼번에 1천4백여명이 포상자로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훈처는 포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94년초부터 1년6개월 동안 2만1천여명의 대상자와 관련된 5만여쪽의 공적기록, 2.5톤 트럭 1대분의 추가자료를 일일이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포상대상자의 독립운동 기록이 명확하더라도 나중에 친일 또는 부역행위를 했는지 면밀히 살피기위해 실무자들이 읍·면·동등 전국의 행정기관과 경찰관서의 각종 자료를 뒤졌다고 한다. 이번 선정작업에는 사학자, 생존 애국지사를 포함해 연인원 3백78명이 참가했다.
보훈처는 『2만1천여명의 심사대상자를 애국계몽운동, 의병, 3·1운동, 만주·노령방면, 임정·중국방면, 광복군, 학생운동등 독립운동 계열별로 분류해 포상자를 선정했다』며 『앞으로 자료가 보완되면 재심사해 추가로 포상하겠다』고 밝혔다.<손태규 기자>손태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