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터프 가이」로 불리는 젊은 스타들이 TV 드라마를 누볐다. 그들은 풍요로워진 사회 속에 홀로 사랑 결핍증에 걸린 양, 쓸쓸하고 거칠고 반항적인 풍모를 보이면서 신세대 대중의 우상이 되어가는 듯했다.「모래시계」 「아스팔트 사나이」등을 보면 그들나름의 「남자다운 매력」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나이 든 시청자들도 일종의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남자답다」는 것은 「남자로서의 특성과 미덕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들의 경우 용기와 의리, 집념등 한 쪽 부분이 강조되고 관용과 도량 같은 성숙한 남자에게서 기대되는 덕목은 찾기 어려웠다.
「터프 가이」와 시청자의 거칠어진 감수성을 보통의 수준으로 순치시켜 준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더 큰 폭력, 엄청난 참사였다. 「터프 가이」들은 이 참사 이후 드라마에서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다. 대신 보편적 정서를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해서 그날그날 살아가며 겪는 일상적 갈등과 사랑, 좌절, 희망등을 엮어가고 있다.
모르는 사이에 대중은 건강한 정서적 복원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해마다 여름이면 입장객이 붐비던 할리우드 액션·폭력영화의 개봉관이 한산해졌다. 관객은 서정적 영화에서 참사로 받은 심리적 상처를 위안받으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실에 지쳤을 때 드라마나 영화라는 창문을 통해 현실 저너머를 보고싶어 한다. 사람들이 작품에서 기대하는 것은 이상적인 현실찾기이다. 신춘문예에 낙선한 문학도들이 흔히 하는 불평이 있다. 『작품이 비현실적』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지적에 대해 그들은 『그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실화를 여과시키지 않고 그대로 반영할 때, 오히려 작품으로서는 리얼리티를 잃게 된다. 현실과 허구(픽션)의 길은 여기서 갈라진다. 작품화하기에 현실은 지나치게 가열한 것이다. 어떠한 허구도 우리가 근래 겪은 성수대교 붕괴나 대구 가스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현실의 가혹함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우리는 터프하지 않은 감수성과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전에 인내심을 가지고 참사의 마무리를 지켜보지 않으면 안된다. 괴롭더라도 이 참사에서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황폐한 사회를 넘어서는 길일 것이다.<문화 2부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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