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대통령 대리역할 맡아/「만약」대비 방패막이 의지도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발언으로 야기된 전직대통령 거액 비자금설에 대한 정부의 진상조사 의지 발표과정을 보면 지금까지와 다른 특이한 점이 한가지 눈에 띈다. 정국전반에 엄청난 소용돌이를 몰고올 메가톤급 사안의 수습책임을 이홍구총리가 떠맡은 형국이 그것이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진상규명을 지시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물론 이총리는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검찰에 조사를 지시하면서 청와대와 당, 관련부처등과 사전조율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비록 김대통령의 위임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이총리가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서는 모습은 갖가지 해석을 불러일으킬만 하다.
이같은 문제해결 방식은 우선 『만약의 경우에 대비, 대통령은 보호해야한다』는 이른바 「방패 총리론」으로 해석할수 있다. 반대로 조사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단순한 루머나 「사기꾼의 장난」정도로 결론날 경우의 위험부담을 덜겠다는 뜻도 있는 듯하다.
더욱이 김대통령은 갑자기 불거진 민감한 현안에 집착할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주일후 광복50주년 기념일을 맞게 되고 이어 당정개편등 집권후반기에 대비한 일련의 조치들로 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사안의 진상조사 책임을 이총리 내각이 떠맡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오히려 후반기 김정부의 당정간 역학관계나 내각의 역할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이총리는 지난 1일 김대통령의 집권후반기 개혁방향등을 제시하면서 『내각에 무게가 실리게 될 것이며 내각은 내각대로 분발해 개혁의 중심이 돼야 할 것』이라는 이른바 「내각중심 개혁론」을 표방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전직 대통령 비자금설 진상조사는 그같은 발언후 떠맡게 된 첫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과정과 결과는 현정부가 강조하는 후반기 개혁의지를 가늠해보는 잣대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첫 과제치고는 부담이 너무 큰 탓인지 벌써부터 정부부처와 관련기관간의 불협화음도 적지 않은 듯하다. 총리실은 지난 5일부터 이날까지 『정부의 공신력있는 기관, 즉 검찰이 진상조사토록 지시했다』고 누차 밝혔다. 그런데도 검찰은 7일하오까지도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조사의뢰를 받은 바 없다』며 『처벌을 목표로 수사하는 검찰이 해명을 위한 조사를 하기는 곤란하다』며 발을 빼 혼선을 빚기도 했다.
따라서 이총리로서는 이번 기회가 「방패총리」 「그림자총리」를 벗어나 개혁을 주도하는 내각의 사령탑이 되느냐의 시험대이기도 하다.<홍윤오 기자>홍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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