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변수 많아 전면착수 부담/선 진상파악후 대처강구 자세청와대는 「전직대통령 4천억 비자금설」에 관해 일단 관망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날 여름휴가에서 돌아온 김영삼 대통령은 7일 공식업무에 들어가자마자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후임을 임명하는등 이번 사건의 파문을 조기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진상을 둘러싼 조사여부등 구체적인 해법에 대해서 청와대측은 『내각 차원에서 적절한 조사와 해명이 있을 것』이라며 한발 뒤로 빼고 있다.
이번사건에 대한 청와대측의 공식반응은 없지만 『서전장관의 발언이 언론에 잘못 보도된 측면이 있다』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이홍구총리의 책임하에 이루어질 진상조사도 서전장관의 정확한 발언내용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언론보도내용을 종합해보면 서전장관이 전직대통령의 측근에게서 비자금 얘기를 들었고 서전장관이 이를 한리헌 경제수석과 추경석 국세청장에게 문의했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며 『이에 대한 진위여부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수석이 서전장관으로부터 그같은 문의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펄쩍 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전장관이 사석에서 한 얘기가 왜곡돼 알려진 것같다』면서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뒤 대처방안을 강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관계자의 이같은 언급으로 미루어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는 우선 서전장관을 불러 당시의 발언내용을 청취한뒤 서전장관에게 비자금 얘기를 했다는 사람을 조사하는 선에서 끝날 것같다. 이번 사건의 파문이 확산된뒤 서전장관이 해명했던대로 『시중의 루머를 얘기한 것이 와전됐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조사를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본질을 건드리지않고 서전장관의 「실언」을 확인하는 쪽으로 해법을 찾아가는데는 나름대로 몇가지 속사정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무엇보다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정치자금문제를 자칫 잘못 다루다가는 여권전체가 공중분해할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전직대통령이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는지의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검찰의 본격조사나 국정조사가 착수된다는 것은 지금과 같이 구심력이 약한 여권에 치명적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법률적으로 뚜렷이 범법행위가 확인되지않은 마당에 본격적인 수사가 어렵다』면서 『설사 비자금조성여부를 조사한다해도 주로 구여권의 거물급 인사들을 조사할수밖에 없는데 현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도 비난여론이 끝내 가라앉지않을 경우 은행감독원이나 금융기관의 자체조사를 통해 비자금의 존재여부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방식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도 부담은 따르지만 휴면계좌나 가·차명계좌의 실태를 파악한다는 차원에서 내부적인 조사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국세청을 동원하는 방법은 결국 자금추적조사와 함께 관련인들의 조사로 이어지기때문에 채택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측이 내심 우려하고 있는 또하나의 문제는 정치자금문제를 둘러싼 화살이 현정권에까지 돌려지지않을까 하는 것이다.『과거 정경유착의 부패고리속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얽혔던 정치자금 문제가 계속 비화될 경우 도덕적인 상처를 입지않을 정치인은 별로 없다』는 한 비서관의 언급이 바로 이같은 여권핵심부의 고민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신재민 기자>신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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