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넘어가면 개혁에 상처”/“설화로 끝날 문제아니다” 여론에/조사넘은 「검찰수사」 확대 불가피정부가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의 「전직 대통령 4천억 가·차명계좌설」발언에 대해 정부차원의 진상규명을 공식 표명함으로써 발언 파문은 새국면을 맞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6일 『진상규명의 주체가 될 「공신력있는 기관」은 결국 검찰이 될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초 뜻하지 않은 「말실수」처럼 시작된 발언파문은 발언당사자인 서전장관의 의도와 관계없이 확대일로를 치닫게 됐다.
정부관계자는 『사안자체가 수사대상은 아니라고 보며 진상규명은 일종의 조사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조사라고 해봐야 사실을 확인하는 수준의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여론은 그렇지 않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위를 가려야 한다는 쪽이다. 정부가 그냥 넘어가려 했다가는 개혁정책전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상황이다. 문제발언이 비록 시중에 떠도는 루머를 근거로 했다고는 하지만 발설자가 현정권의 실세 장관이고 시기의 미묘함을 고려한다면 결코 해프닝성 「설화」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4일 전격적으로 사표가 수리된 서전장관의 태도도 당황하고 의기소침 해있던 것과는 좀 달라보였다. 그는 이임사에서 『개혁에 대한 일부 저항움직임이 개혁의 본질을 왜곡하는 현상은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제가 사석에서 한 발언의 진의였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도 이나라 역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미력이나마 저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갖고 있다』고 「소신」을 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번 파문의 진화를 위한 모든 조치를 이홍구 국무총리를 중심으로한 내각에 일임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공식조사 혹은 수사가 앞으로 어느정도 선까지 진행되고 이것이 다시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른다. 이총리는 5일 상오 이미 청와대와 당, 정부내 관련 부처·기관들과 상의를 마친 뒤 진상조사 계획을 언론에 공표토록 지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4일 아침 이총리는 김윤환 민자당사무총장 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 이원종 정무수석비서관과 회동을 갖고 서전장관 사퇴와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문제등에 대해 의견을 조율했고 여기서 큰 방향과 원칙은 정해졌다는 후문이다.
정부여당은 서전장관이 공식·비공식으로 해명한데이어 사퇴까지 했음에도 불구, 국민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의혹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는 당연히 서전장관으로부터 직접 정확한 발언 경위와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부터 시작되겠지만 진위 여부를 가리는 단계로 넘어가면 검찰 은행감독원 국세청등이 함께 뛰는 일종의 「수사」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상당한 자료와 심증을 확보하고 있어 수사의 정도에 대해서는 선택의 문제만 남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공식조사를 선언한 정부가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가는 여론의 역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선언한 조사의 방향이 새삼 주목되고 있다.<홍윤오 기자>홍윤오>
◎5·6공 정치자금 어떻게 조성했을까/대형사업 리베이트가 주원천/기업들 「떡값」·「보험금」조 헌금 상당수/예우차원 성역시… 자금규모 베일속
한국정치에서 대통령의 정치자금은 성역이었다. 검찰도 수사대상에서 제외해 왔고 야당도 한 수 접어주는 게 관례였다. 과거부터 이러한 「예우」는 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에까지 불문율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검찰, 국세청도 수표추적을 하다가 청와대 근처인 효자동지점의 수표가 나오면 이를 중단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때문에 대통령의 정치자금 조성방법, 규모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다만 권부 주변, 재계에서 흘러나온 말들을 통해 「빙산의 일각」이 노출되고 있을 뿐이다.
5, 6공시절 야당은 천억원대를 넘는 안기부의 예비비가 대통령 비자금의 한몫을 차지했다며 여권을 공격했었다.
하지만 예산전용을 통한 자금은 어느정도 공식성을 띠고 있어 은밀한 정치자금과는 거리가 있다. 안기부관계자들도 『야당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예산을 전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자금의 주된 원천은 대형 프로젝트의 리베이트라는 게 정설이다. 대형 국책사업, 무기의 국제거래 등에 있어서 낙찰가의 일정부분이 커미션이라는 것은 공지의 사실로 굳어져있다. 이들 사업은 워낙 규모가 크기 때문에 권력자들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대상으로 선호하고 있다. 이런 전후사정으로 엄청난 규모인 원자력건설, 74년부터 22조원 이상이 투입된 군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10조원 이상이 투입될 고속전철사업, 골프장건설 등 대형사업에는 정치자금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커미션, 리베이트와는 달리 기업들이 이권을 기대하면서 수십억∼수백억원을 헌납하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또한 일부 기업들은 청와대로부터 미운털이 박히지 않기 위해 「보험금」 성격의 헌금을 내놓기도 했다. 5, 6공때 기업들은 연말연시나 추석, 대통령초청식사 등을 기해 거액의 「떡값」을 청와대에 내놓았다.
기업의 헌금은 반대급부에 따라 성격, 규모를 달리했다. 5공 초기에는 기업들이 권부의 서슬에 눌려 보험금 성격으로 거액을 내놓았다가 얼마후 「특혜」라는 반대급부를 받게 되면서 청와대와 재계 사이에 정치자금의 라인이 형성됐다. 반면 6공때는 많은 기업들이 이권을 기대하며 거액을 내놓았으나 일부 기업들만이 특혜를 받게되면서 재계로부터 불만과 잡음이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 비자금의 규모는 천문학적 숫자이다. 5공의 한 핵심인사는 전두환당시대통령이 노태우후보에게 6·29선언직후 7백여억원, 선거기간에 1천3백억원, 퇴임시 5백50억원을 주었다고 본사 실록청와대 취재팀에 증언한 바 있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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