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이해하는 데 가장 곤혹스러운 것중 하나는 미국 전체를 하나로 묶어 말하기에는 「나라」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제도나 법률에 관해 미국은 50개의 국가로 존재한다. 애당초 「합중국」의 출발이 그렇기도 하고, 그 이후의 지방자치 발달이 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미국 지방자치의 묘미는 역시 민주·공화 양당 정치인들이 빚어내는 타협과 마찰의 이중주다. 뉴욕의 경우 지난 몇년간 유난히 일이 많았다. 민주당의 아성인 이곳에서 92년말 공화당의 루돌프 줄리아니가 뉴욕시장에 당선되면서 파란은 시작됐다.줄리아니는 기실 인종갈등의 수혜자였다. 전임 데이비드 딘킨스 시장 재임시 일어난 유대계와 흑인간의 충돌이 인종문제로 비화됐고, 피부색에 따라 표가 갈렸다. 흑인들은 몽땅 같은 흑인인 딘킨스를 찍었고 백인들은 같은 백인인 줄리아니에게 표를 몰아줬다. 경제사정 악화와 범죄만연에 따른 누적된 불만도 승패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인종싸움이었다.
그렇지만 줄리아니는 인종문제에 발목이 잡히지 않았음은 물론 민주당 터줏대감 마리오 쿠오모 주지사와도 소모적 대립을 하지 않았다. 당적을 달리하긴 했으나 현안인 민생문제 해결에 대한 해법제시에서 두 사람은 호흡을 같이 했다. 심지어 지난해말 있었던 주지사선거에서 줄리아니는 같은 공화당의 조지 파타키 후보대신 쿠오모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접전끝에 파타키가 승리함으로써 줄리아니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보복설이 꼬리를 물었다. 줄리아니의 민주당 이적설도 심심찮게 나돌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취임초 한동안 어색한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곧 공복으로서의 직분에 흔들림없이 충실함으로써 호사가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이제 막 지방자치시대의 문을 연 우리에게는 그저 부러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정치문화를 가능케 한 것도 결국은 유권자들의 표였음을 새겼으면 한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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