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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진 삶의 이야기 되살려내(연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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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혀진 삶의 이야기 되살려내(연극평)

입력
1995.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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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광복 50돌 공연 「눈꽃」문화활동으로서 연극은 지난 일을 오늘에 되살려 이야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연극이 역사책과 다른 점은 역사의 재구성에 있어 만드는 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보는 이들을 감동시켜야 하는 예술활동이라는 점이다. 광복을 맞은 지 50년이 되는 올해는 연극이 역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다양하게 시도하고 검증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인데 아직 그 양과 질이 턱없이 빈곤하다. 그런 가운데 국립극장과 한국일보사가 광복50주년 기념으로 공동주최한 장막희곡 공모 당선작인 우봉규의 「눈꽃」이 김석만의 연출로 공연되고 있는 것은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눈꽃」은 궁핍한 조국을 등지고 러시아땅까지 찾아간 한인들이 항일과 이데올로기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겪는 이야기이다.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또 한번 뿌리가 뽑혀 우여곡절끝에 만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기득권을 가진 중국인의 일방적인 요구에 시달리고 항일운동이 국내외에서 치열해지면서 극심해지는 일본군의 횡포에 희생된다. 또 소련당국은 블라디보스토크 이주를 희망하는 한인들을 냉대하고 오히려 항일의지만 이용할 뿐이다. 대처방법을 놓고 신구세대가 갈등하다가 결국 구세대는 지금까지 일궈온 땅을 지키고 젊은이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이념논쟁과 분단으로 인해 사장되었던 삶의 기록을 되살려 이야기한다는 의미에서 「눈꽃」은 가치있는 작품이다. 한반도 모습을 객석으로 돌출시키고 북방의 지형을 주요무대로 형상화한 이태섭의 무대장치가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역사의 현장을 끌어 당겨 비로소 재조명하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원로배우들이 함께 이루는 연기의 앙상블은 역사안에서 희생자이면서도 버팀목의 구실을 담당하는 민중의 모습을 균형있게 되살린다.

그러나 「눈꽃」은 역사의 기록을 어떻게 연극예술로 승화시키는가의 기준으로 볼 때는 우리나라 역사극이 갖는 보편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긴장감있는 극적 구성보다는 해설로 느슨하게 풀어가는 방법, 스테레오타입적인 인물묘사와 설명조의 대사들, 민중의 존재를 애절한 사연과 한맺힌 역사로 어둡게만 풀어가려는 감상주의적 시각등은 아직도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역사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역사는 오늘도 숨가쁘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을 보는 감각과 재구성의 기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한국연극의 자화상을 비추는 작품이다.<이혜경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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