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이 4천억원의 가·차명 예금을 가지고 있으며 정부와의 타협으로 이 돈을 처리하려 했다는 「설」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는 매우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보아야 한다.○4천억설 충격파
첫째는 금융실명제가 조롱받았다는 점이다. 금융실명제의 기본목표는 금융거래를 투명화, 궁극적으로는 검은 돈을 비롯한 모든 자금이 시장으로 유입되도록 해 생산적인 활동에 사용되도록 하고 금융소득에도 예외없는 과세로 불로소득의 발생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과 언론이 금융실명제의 도입을 찬성했던 것은 이같은 기본목표 달성이 소득의 불공정분배등 경제와 사회의 뿌리 깊은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전직 대통령은 공장을 몇개나 세우고도 남을 거액을 가·차명으로 보유하다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실명화하려했다고 한다. 4천억원의 절반을 정부에 기탁하는 대신 나머지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쳐달라는 요구는 실명제의 정착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짓밟아 버린 것과 같다. 재임중 공정한 부의 분배를 통한 사회정의 확립을 몇차례나 강조했었을 과거의 통치권자가 세금을 피하려 했다는 것은 사회정의 확립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둘째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할 도덕성이 지도층에 의해 무시됐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오랜 관행상 비자금이란 있을 수도 있다지만 4천억원이란 돈은 단순히 뇌물을 받는 정도로 조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모든 사업과 이권에 개입하고 권력을 이용한 강압과 특혜등 조직적 구조적 부패가 총동원되어야 만들어질 수 있는 돈이다. 그동안 일부 발표됐던 고위공무원들의 뇌물은 이 과정에서 떨어져나오는 부스러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
○총체적 부실 근원
세번째는 이같은 부패와 이를 통한 축재가 최근들어 곳곳에서 불거져나오는 우리사회의 모든 부실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4천억원을 5년여에 만들기위해서 우리경제에는 말할 수 없는 피해와 왜곡, 기회상실과 국민의 희생이 있었을 것이며 그중의 하나가 사회총체적 부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는 물론 그 앞서 발생, 온국민을 불안케했던 각종 부실사고 역시 가닥을 짚어나가면 그 원인이 이번 일에 뿌리가 닿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으로는 누구도 터무니없는 검은 돈을 조성할 수 없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시급하다. 그중의 하나가 돈 안드는 정치의 정착이다. 4천억원은 결코 자신과 가족들이 잘 살기위해 필요한 돈은 아니다. 권좌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조직을 운영하고 정치적 부활을 위해 모아놓은 돈일 수 있다. 통합선거법으로 돈 안드는 정치가 가능하게 됐다지만 지난번 지방선거에서도 사실은 엄청난 돈이 뿌려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고가 사라져야만 권력자의 부패도 사라질 수 있다. 이는 또 이 시점에 필요한 참신한 정치지망생들의 정치권 진입을 유도하는 효과도 가져오게 된다.
○부정소지 없도록
다음은 모든 국가적 대형사업과 정부차원의 외산 물자도입은 물론 금융기관 인사등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기관의 인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 권력자의 축재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다. 탁하고 어두운 상태에서는 누가 무엇을 해도 잘 알아차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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