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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한국통사」(고전여행: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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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한국통사」(고전여행:19)

입력
199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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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선정 동서양 200선/신채호와 함께 민족사학 거봉/백암사관 정수 「국혼론」 체계화/사건중심 근대역사서술 원용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1859∼1925)은 열렬한 독립투사이자 뛰어난 민족사학자였다. 단재 신채호와 함께 2대 민족사학자로 꼽히는 백암은 『나라의 혼을 담은 국교와 국사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백암역사관의 정수인 「국혼론」은 4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했다.

제1단계는 1905∼1910년께로 자강론에 기초를 두고 정신과 국사를 강조한 시기다. 제2단계는 1911년을 전후한 때로 민족정신의 표상인 민족적 영웅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제3단계는 「한국통사」가 씌어진 1915년 언저리로 볼 수 있다. 백암의 역사관이 국혼론으로 체계화한 시기로 볼 수 있다. 제4단계는 1920년께로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통해 국혼론적 역사인식을 독립운동사에 적용한 시기다.

국혼론을 체계화한 「한국통사」에서 백암은 국가의 구성요소를 정신적인 국혼과 물질적인 국백으로 구분해 파악했다. 여기에서 국혼은 국백보다 더 근본적인 요소로 간주됐으며 종교 언어 문학 역사등을 포함하는 민족문화의 개념으로 정의됐다. 다시말해 국혼은 오늘날의 민족정신의 개념과 바로 이어지는 것이다.

백암은 국혼의 여러요소 가운데 역사를 국혼의 소재처로 생각, 가장 중시했으며 「한국통사」를 쓰게 된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혼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한국통사」에서의 주장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국혼이 강한 한국민족은 반드시 독립한다』는 확신으로 굳어졌다.

상해에서 출판된 「한국통사」는 1864∼1911년의 한국근대사를 3편1백14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제1편에서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환경과 역사의 대강을 다루고 2편에서는 대원군 집권 이후부터 대한제국 성립 이전의 역사를, 3편에서는 대한제국 성립이후 국망까지의 역사를 기록했다.

「한국통사」는 전통적인 역사서술 방법인 기전체나 편년체를 따르지 않고 근대적 역사서술 체계를 원용해 사건중심으로 장을 나누었다. 백암은 「한국통사」에서 각 사건들의 내용을 설명할 뿐 아니라 사건의 원인과 그 결과까지도 서술·논평하는 등 사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렸다.<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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