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지나간 얘기가 돼 버렸지만 70년대만 해도 미국무부의 연례 세계인권보고서와 국제사면위원회에서 발표하는 세계인권유린현황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면 항상 신문사 데스크에는 기사중 한국부문을 빼 달라는 부탁이 어디선가 들어왔다. 그런 전언이 들어오면 편집국기자들은 기사취급문제를 놓고 설왕설래했었다. 그 기사를 돌려가며 본다. 도대체 동방례의지국으로 불리는 나라가, 경제는 아직 선진국이 아닐지라도 교육수준은 선진국대열에 올라와 있는 국가가 인신을 마구 구금하고 구타, 고문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는 탄식들을 하곤 했다.그러다가 80년대 후반에 들어 이땅에 민주화가 오고 노동운동이 궤도를 잡는 과정에서 민중이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민중은 정치인의 뺨을 때리고 지금까지 잘 모시던 사장을 땅바닥에 꿇어앉혀 노래를 부르게 하는 모욕을 주기도 했다. 데모 광경을 보면 붉은 머리띠를 이마에 두른채 주먹을 휘두르며 쟁취구호를 외쳐대는 모습이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한다. 바닷가에서 고기나 잡으며 조용히 지낼 어민들도 이번 여수 기름유출사건에서 보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공중에 휘두르며 전쟁판 데모를 하고 있다. 조남호서초구청장은 삼풍유족들을 위한 문상을 하러 갔다가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정부폭력 시대에서 민중폭력시대로 넘어간 느낌이다.
민중폭력은 첫째 해결해야 할 쟁점이 있고 둘째는 이 쟁점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풀어갈 법체계가 없다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라도 외쳐대야 일이 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중을 대변할 법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서구법 체계라면 삼풍사건, 남해 기름유출사건 정도라면 피해자들은 얼마든지 그들을 대표할 유능한 변호인단을 구할 수 있다. 유능한 변호사들이 찾아온다. 이런 큰 사건을 맡는 변호사단은 대개 돈도 많이 벌고 유명도도 더 얻게 되기 때문에 싸움의 대상이 정부가 됐든 기업이 됐든 일을 맡고 처리하는 일에 사력을 다한다. 대한항공(KAL)007사건에 뛰어든 미국변호사들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우선 변호사가 수적으로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법조계가 일련 번호로 선후배관계를 매길 수 있을 정도로 단일화해 있어 법정에서의 이론적 싸움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로 스쿨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로 스쿨제도가 도입돼 다양한 법조인이 실력으로 싸우는 법체계가 정비되면 노상의 데모구호나 백주에 주먹이 날아가는 원색적인 폭력사태는 사라질 것이다. 쟁점은 법정논쟁으로 승화할 것이기 때문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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