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청산 미흡 현대사 왜곡/역대정권들,단죄에 의도적 소극/인물·제도·의식 곳곳에 일제잔재/민족 정체성 이제 확립할때광복 반세기가 다가온다. 지금 우리의 광복은 완전한 것인가. 이 물음에 우리는 누구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식민지시대의 잔재가 우리의 생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광복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는 부끄러운 역사의 청산이다. 늦었어도 그런 용기를 가져야 광복후 50년을 설계할 수 있다. 한국일보는 청산해야할 식민지시대의 유산과 길이 마음에 새겨두어야할 사실들을 짚어보고 다시 열리는 반세기를 조망하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주>편집자주>
『과거는 과거다. 이제 과거는 역사 속에 묻어버리자』
2차대전이 끝난지 40년만인 85년, 나치 게슈타포의 프랑스 리옹지역 총책 바르비가 프랑스 정보기관에 체포될 때 던진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법정은 수많은 레지스탕스와 유대인을 살해한 「인간백정」을 용서하지 않고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언도했다. 그로부터 9년 뒤 프랑스 법정은 나치 게슈타포의 밀정이었던 프랑스인 폴 투비에에게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프랑스 전외무장관 롤랑 뒤마는 폴 투비에 재판에 대해 『50년만에 열린 재판에서 전진하는 역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사청산이 단순한 과거죄과의 단죄만이 아니고 미래사에의 경계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준 것이다.
광복 50년을 맞는 우리는 어떤가. 엄밀히 말하면 광복이후 일제잔재의 청산, 역사 바로잡기가 제대로 시도된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도 역사청산을 마무리짓지 못해 그로 인한 국론분열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물론 건국직후 반민특위를 통한 친일세력의 청산작업이 있었다. 48년8월 정부수립과 동시에 구성된 국회의 반민특위는 친일세력의 견제, 이승만정권의 외압, 친일파 경찰의 반발 등으로 발족 1년만인 49년8월 와해되고 말았다. 정권기반 강화를 위해 친일파 관료들을 대거 기용한 이대통령은 반민특위를 정치적 적대세력으로 간주했다.
이정권은 의도적으로 반민특위를 제압하려 했으며 이를 배경으로 반민특위에 대한 습격, 암살음모사건이 잇따라 터져 반민특위는 역사적 책무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일세력의 단죄는 집행유예 5인, 실형 7인, 공민권 정지 17인에 그쳤다. 그나마 실형을 받은 7인도 50년 봄 재심청구로 모두 풀려났다. 이는 다른 국가들의 전후청산작업과 비교하면 자괴감마저 느끼게 한다.
프랑스는 2천여명 사형에 4만여명을 징역형에 처했고 벨기에 네덜란드가 5만여명에게 징역형을 내렸다. 패전국인 독일은 전후 30년동안 9만명을 기소, 5천여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고 일본도 21만명이 공직에서 추방돼야 했다.
반민특위 와해이후 친일세력의 청산은 더 이상 제기되지 않았다. 박정희전대통령이 일본 육사출신이듯 역대 통치자들은 성향상 역사청산과는 거리가 있었고 스스로의 정당성 결여로 역사청산에 적극적일 수 없었다. 대신 역대 정권들은 경제발전에 주력했으며 이 와중에서 일제에 기생했던 대지주와 상업자본가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한국전쟁(1950년)으로 인한 냉전체제의 고착과 남북간 대결구도는 역사청산의 여지를 막아버렸다. 이정권때 이미 반공은 국시로 자리잡았고 이후 박정권 전두환정권에서는 역사청산 노력은 국시인 반공의 반대편 행위로 오도됐으며 반체제행위로 몰리기까지 했다. 때문에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각 분야에는 지금도 일제잔재가 남아있다. 누가 친일파이고 애국자인지도 정리되지 않았고 친일세력이 우리 사회의 주축을 형성하는 반역사적 현실까지 나타났다. 반면 애국지사와 그 자손들은 가난과 병마로 소외된 인생을 살고 있다. 최근 각종 연구를 통해 5공화국 이전까지의 국무총리, 각부 장관, 치안국장·서울시 경찰국장, 대법관중 다수가 일제 관리출신 내지는 동조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화 예술 종교계에서도 명망있는 문인 화가 음악가 종교인들의 친일행적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언어 생활 의식구조에 남아있는 일제잔재는 스스로를 놀라게 할 정도다. 일제때 통용되던 교육방식, 일본식 이름이나 지명, 집단주의적 정치행태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일제잔재가 온존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잔재 청산의 실패, 친일세력의 득세는 해방이후 한국사를 왜곡시켰고 「힘이 정의를 누른다」는 그릇된 의식을 뿌리내리게 했다. 최근들어 『뒤늦게나마 역사를 바로잡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일각에서는 『이제와서 재론해야 분란만 생긴다』고 회의론을 펴고 있지만 올바른 역사의 정립 없이 우리 민족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 지금 누구를 단죄하자는 게 아니라 친일세력과 애국지사를 명확히 밝혀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자는 의식의 눈뜸이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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