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논리따른 불신감제거 급선무/적대벗어나 포용자세 절실/합의-교착 악순환 고리끊어야남북한은 그동안 화해와 협력을 위해 여러차례 노력해왔다. 첫번째 노력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후에 진행됐다. 그러나 공동성명이후 남한의 선사회·경제·문화교류론과 북한의 선군사·정치적 문제해결론이 맞서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두번째 노력은 1984∼86년에 있었다. 1984년 9월 홍수를 겪은 남한을 위해 북한이 쌀 섬유 시멘트등을 제공하겠다고 제의, 남한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교류는 경제회담·적십자회담·국회회담·체육회담등 5개통로로 진행됐으나 1985년 9월 고향방문단과 예술인·언론인의 교환방문이라는 성과에 머물렀다. 1990∼1992년에 있었던 세번째 노력은 남북총리를 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통해 이루어졌다. 8차에 걸쳐 진행된 회담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등을 합의하고 92년 10월 남북화해공동위원회라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합의하는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그후 핵문제로 인해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다.
이상과 같은 남북한의 화해협력사에 대한 회고는 우리에게 희망과 실망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우선 첫번째 회담이 중단된지 10년만에 두번째 회담이 개최된 반면, 세번째 회담은 중단된지 5년만에 개최되는등 회담중단기간이 짧아지고 있으며 회담의 내용도 갈수록 구체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간이 불신감 때문에 화해협력방안에 합의를 해놓고도 구체적인 실천단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은 실망스러운 일이다. 결국 남북한은 아직 서로의 관계를 적나라한 힘의 관계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화해협력을 하지 못하고, 화해협력을 하지 못해 힘의 관계를 우호관계로 전환시키지 못하는 악순환관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이처럼 악순환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힘의 균형이 깨질 경우 한쪽이 다른 한쪽에 흡수되어 결국 정체성조차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 관계의 특수성 때문이다. 서독과 동독이 양쪽에 미군과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안보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통일 이전에 사회·경제·문화적으로 화해협력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과 크게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과거의 적이었던 민족과도 친선관계를 수립할 정도로 시대가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한이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민족의 비극이다. 우리는 이제 남북한의 악순환관계를 끊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을 부여받았다. 최근 남한은 북한에 쌀을 제공할 것을 제의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다시 네번째 화해협력의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분단사상 최초의 남북한학술대회도 바로 이같은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남북한학자들은 정부당국자들보다 더욱 객관적인 입장에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이같은 악순환관계를 끊어야하는 인식을 공유해야만한다.
남북한이 악순환관계를 계속 유지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지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남북한이 화해협력을 못하고 서로의 관계를 힘의 관계로만 인식한다면 남북한 군사대결관계는 지속될 것이며 안전보장을 위한 과다한 비용지출때문에 결국 공멸을 초래할 것이다. 둘째로 이 경우 남북한의 외세에 대한 의존성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셋째로 남북한이 화해협력을 못해 각기 분단된 경제단위로 남는다면 이는 커다란 경제적 손실이 될 것이다. 넷째로 남북한이 화해협력을 못하고 이산가족 재회와 재결합의 기회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이산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다섯째로 화해협력이 계속 안될 경우 남북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식과 문화를 갖게 될 것이다. 독일이 통합이후에도 민족이질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볼때 이같은 가능성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남북화해협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결국 서로를 힘의 관계로 보는 우리의 인식구조다. 힘의 대결보다는 화해 협력, 특히 경제협력을 강조하는 세계적 흐름에 남북한도 이제 동참해야 한다.
□이정복 남측대표
67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79년 미국 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80년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
81년 서울대 교수
90∼91년 미펜실베이니아대 초빙교수
◎7·4공동성명원칙 실현을/책임있는 당국자 대화 우선적
남북한 당국은 72년 7월4일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란 남북통일 3대원칙(이하 3대원칙)을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원칙은 남북양측에 통일논의의 기본정신과 자세로 받아들여져 91년 체결된「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3개 조항으로 구체화했다.
그러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는 현재의 남북관계는 이 원칙에 충실해왔다는 남북한 당국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오히려 남북한 당국은 3대원칙의 의미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없이 상이한 해석 속에서 상대방이 이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7·4 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된 3대원칙의 내용을 둘러싼 남북의 해석차를 좁히고 나아가 이를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먼저, 자주의 원칙은 북한이 남한에 주둔하는 외국군(미군)의 존재를 곧장 남한의 외세의존·외세간섭상황으로 간주하면서 문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외국군 주둔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가 호혜의 원칙에서 벗어나 남한의 정치경제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남한에서 어느 정치지도자도 국가 이익에 반하는 미국의 압력에 「노(NO)」라고 대답하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당선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 필요가 있다.
남한 주민의 대다수가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같은 인식은 남한주민들의 45년전의 비극인 한국전쟁에 대한 두려운 기억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이 두려움이 사라질 때 비로소 남한 주민들 사이에서 주한미군이 없어도 안전하다는 의식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평화의 원칙은 주지하다시피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구체적 실천은 3단계의 단계적 조치를 통해 가능한데 그 첫단계는 남북한이 현재의 분단상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며 2단계는 분단상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분단상태를 평화적으로 해소하고 남북한이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먼저 1단계에서는 정전협정의 엄격한 준수에 기초한 상호군비통제, 비무장지대의 긴장완화가, 2단계에서는 남북한의 단계적 군축과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남북한 군관계자들의 교류등이 중요한 실천사항이 될 것이다. 현단계에서 논의가 필요한 것은 바로 1,2단계의 실천이며 1단계에서 2단계로의 진입은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현존질서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따라서 남북한 당국의 진지한 대화를 통한 합의 없이 2단계로의 진입은 불가능한 상태다.
세번째,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전제위에서 성립하는 원칙이다. 이 원칙에 대해서는 남북한 간에 이론이 없으나 민족대단결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론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남북한과 해외의 모든 정당사회단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통일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책임있는 남북한 당국자들이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우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에는 이미 상이한 두개의 주권공동체가 존재하고, 그렇다면 민족대단결의 1차적인 주체는 두 주권공동체를 합법적으로 대표하는 당국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남한사회가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백출하는 다원사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문제의 해법은 명백해진다. 남한의 각 정치세력이 전체사회의 유일사상화를 강조해온 북한과 임의로 통일협상을 벌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다원주의와 다당제에 기초한 남한사회에서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에 다른 대내외 문제와 마찬가지로 통일정책도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는 남북정상회담은 민족대단결의 실질적인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이종석 남측대표
84년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88년 성균관대 정치학석사
93년 성균관대 정치학박사
94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김정일집권과정및 북한내부정치 연구
◎서울대 한국정치연/86년 설립… 한국적특수성 중점 연구/현대정치사 50년 총결산작업 진행중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소장 길승흠)는 지난 86년 12월 서울대 사회과학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한국정치에 관한 체계적 연구와 발전방안 모색을 목적으로 설립, 한국정치분야를 본격적으로 특화시켜 연구해온 학술단체다.
이 연구소는 해방이후 한국현대정치사에 관한 각종 자료수집및 연구, 학술세미나개최, 국내외 연구기관과의 학술교류등을 활발히 벌여왔다. 최근 광복50주년을 맞아 이 연구소는 한국현대정치사의 50년을 총결산하는 정리작업의 일환으로 제1공화국 연구와 해방 전후사 연구등에 주력해왔다.
이와함께 낙후된 우리 정치문화를 개선키위해 「제13·14대 선거에 대한 국민의식 투표형태에 대한 연구」등의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등 한국정치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치이론과 역사적 실재 정치에 대해 집중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또 지난 92년 「동북아권의 발전과 협력」이라는 주제로 중국 지린(길림)성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등의 국제정치관계 및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진단함으로써 이번 회의 개막에 앞서 통일에 대한 학술연구 열정을 보여왔다. 또 이 연구소는 지난 90년부터 북한사회의 변화에 대한 연구에 집중, 「북한은 변하고 있는 가」를 비롯해 「남북한의 평화구조」등 연구논문집을 발표했다. 역사적인 이번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의 개최성사를 통해 이 연구소는 향후 북한학자와 해외학자들을 초청, 정기적인 통일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북한 사회·정치학회/주체사상 골간 통일·체제이론 연구/사회과학원 다음 싱크탱크로 손꼽혀
북한의 사회·정치학회(회장 강운빈)는 70년대초에 설립된 사회과학지도위원회 산하 40여개 학회중 사회정치학 분야의 연구기관이다. 이 학회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골간으로 통일연구를 비롯, 사회주의 체제의 사회정치이론과 국제정치관계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한 학술이론 연구와 학술회의 개최등을 주관해오고 있다.
현재 정규 학회 연구원은 60여명. 하지만 이 학회에는 현재 김일성종합대학교수등 북한내 저명한 사회정치학 학자들이 연구원으로 등록돼 있어 북한 사회과학원 다음으로 북한 사회정치 분야의 싱크탱크로 손꼽힌다. 최근 「김정일탄생 53돌맞이 학술회의」와 「김일성탄생 83돌 주체사상 학술회의」를 준비, 개최한 이 학회는 이들 지도자들에 관한 업적연구와 이들의 사회정치이론 정리에 주력해오고 있다.
또 이 학회는 얼마전 「21세기의 국제사회 발전」이라는 학술대회를 개최, 한반도의 핵문제등 동북아를 둘러싼 현안과 북한 외교·정치이론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회의 참가를 위해 지난 4월부터 예비회의를 정기소집해온 이 학회는 회의개막 1개월전부터는 본격적인 준비작업을 해왔다.
이 학회 회원으로는 한국전쟁이후 월북한 철학연구가 리성준씨를 비롯, 이번 학술회의에 참석한 손영규씨등이 포함돼 있다. 또 이 학회는 리성준씨와 손영규씨가 공저로 낸 「주체사상총서」 10권과 「주체정치론」등 북한내 굵직굵직한 주체사상관련 필독서를 발간했다.<베이징=특별취재반>베이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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