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문상을 갔었을 때의 일이다.상을 당한 사람은 안사람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녀는 학교를 졸업한 지 삼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사람이 경영하고 있는 의상실로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식사도 같이 하고, 마치 자기집처럼 스스럼없이 앉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곤 하는 절친한 친구인데 그녀의 부친이 돌아가신 것이다. 안사람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더구나 필자는 그녀의 남편과도 여러번 술좌석을 같이 한 적이 있었던지라 같이 문상을 하러 갔다.
영안실로 들어서니 준재벌급에 속하는 집안이라 그런지 그 넓은 영안실에 꽤나 많은 문상객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필자는 조례를 표하고 나서 그녀의 남편과 함께 적당한 곳에 술상을 차려놓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거기까진 좋았으나 얼굴이 좀 알려진 탓인지 여기저기서 다가와 잔을 들이대면서 술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술이라고는 소주밖에 마시지 못하는 데도 맥주고 양주고 닥치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셨다. 그러나 여덟 아홉잔까지 받아 마신 것은 생각이 나는데 그 다음부터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영 기억이 안나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안사람의 눈은 영락없는 도끼눈이 되어 있었다. 사연인 즉은 이러했다.
어찌나 여기저기서 술을 권하는지 이러다간 사람 잡을 것 같아 딸을 부추겨서 간신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이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놓았더니 분주하게 음식들이 나오고 있는 쪽을 향해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것도 한껏 목청을 높여 마치 고함을 치듯 『이봐! 여기 얼마야! 계산서 가져 오라고!』하며 지갑을 꺼내 들더란 것이었다.
초상집을 술집으로 알고 앉아 있었던 내 꼴을 보고 사람들은 필자를 뭘로 보았을까? <이진수 연극배우>이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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