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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하룻만에 철회/다케무라 일 사키가케 대표(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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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하룻만에 철회/다케무라 일 사키가케 대표(뉴스 메이커)

입력
1995.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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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선거 참패 지도부인책 도화선 될뻔/“「위기연정」분위기 개선” 계산된행동 시각도일본신당사키가케의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표가 대표직 사의를 표명, 일본 정가를 한차례 흔들었다.

그는 「참의원선거의 엄중한 결과」와 「대장성 기강숙정 부진」에 대한 책임감을 이유로 28일 사의를 표명했다가 하룻만에 철회했지만 그사이 연립정권전체가 바짝 긴장했다. 꼬마정당 대표의 거취가 이런 파문을 던진 것은 그만큼 지난 23일의 참의원선거로 연정의 기반이 흔들린 때문이다.

참의원선거에서 약진한 신진당의 「중의원 조기 해산」공세와 함께 자민당과 사회당, 사키가케 모두가 당내의 변화요구로 안팎으로 시달려 왔다.

9월의 자민당 총재선거를 앞두고 은근히 무투표추대에 의한 재선을 바라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총재는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통산성 장관을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의 강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참패를 겪은 사회당도 총리를 계속 맡는 어정쩡한 상황 탓에 아직 드러내 놓지만 못할 뿐 지도부 인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개선의석 1석을 3석으로 늘렸으면서도 지지율이 대폭저하, 처음으로 소선거구제로 치러질 차기총선을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사키가케는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한층 격렬한 논쟁을 겪어왔다. 선거전에 이미 당내 소장파를 주축으로 연정으로부터의 「비상탈출론」이 강력히 제기됐다.

때문에 사키가케의 대표교체는 일본 정국전반을 뒤흔드는 대형폭탄의 도화선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책임지는 분위기에 불을 붙이면 곧바로 자민당과 사회당에 파급되고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여론은 한결 엄중해질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의 조기총선돌입은 연립여당의 자살을 의미할 뿐이다.

29일 상오에 열린 연립여당 대표회담에서 무라야마와 고노 두사람이 다케무라의 사의를 적극 만류한 것도 일단 연정을 유지한 뒤 기회를 봐 의회해산과 총선에 나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 이번 사의표명이 단순히 「맘좋은 아빠」라는 그의 별명대로 책임감에서 비롯된 순수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마키아벨리스트」 「발칸의 정치가」라는 평가가 있듯 철저히 계산된 행동일 가능성이 짙다. 사키가케내부의 비판이 김이 빠져버린 것은 물론 「현존하는 위기」를 한차례 몸으로 느낀 후의 연립여당 전체의 분위기도 달라질 조짐이어서 다케무라의 「계산」은 일단 소정의 효과를 본 듯하다.

지난 34년 사가(자하)현의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학으로 나고야(명고옥)대 공학부와 도쿄대를 거쳐 자치성관료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의지의 인물이다. 지난 71년 36세의 나이로 고향인 요카이치(팔일)시장에 당선, 정계에 입문했고 사가현지사와 중의원 3선등의 경력을 갖고 있다. 93년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민당을 탈당, 신당사키가케를 결성해 호소카와(세천호희) 연정에 참여한 이래 2대연정의 뺄 수 없는 양념이 돼 왔다. 자민당시절 오자와(소택일랑) 현신진당 간사장에 대놓고 반대할 때부터 1백80㎝, 90㎏의 거구에 걸맞은 「야심」을 숨기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하다.<도쿄=황영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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