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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권조사단장 사임/마조비에츠키 전파총리(뉴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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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권조사단장 사임/마조비에츠키 전파총리(뉴스 메이커)

입력
199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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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학살의 비극 외면 국제사회 위선 개탄/“허울뿐인 인권수호자” 미련없이 직책 버려『국제사회는 보스니아국민들 앞에서 위선의 탈을 벗어야 한다』

금세기 최악의 민족간 살육이 자행되고 있는 보스니아에서 인권 수호의 마지막 상징이었던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68) 구유고연방 유엔인권조사단장이 27일 사임했다.

마조비에츠키는 세계 지도자들이 보스니아의 비극을 외면한 채 책임떠넘기기에 급급한 현실을 비난한 뒤 『국제사회는 더이상 인권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낸 사임서한에서도 『유엔은 약속과 달리 안전지대인 스레브레니차와 제파를 너무도 쉽게 포기했다』며 『평화를 지키려면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지난 89년 폴란드에서 전후 최초로 출범한 비공산 정부의 총리를 지낸바 있는 실천파 지식인인 마조비에츠키가 이처럼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국제사회가 입버릇처럼 떠들어온 인권보호 외침이 보스니아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유엔도 이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절실히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회교도에 대해 강간과 학살등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진 뒤인 92년 8월 유엔인권조사단장이라는 중책을 떠맡았다. 전선을 누비며 세르비아계는 물론 회교 정부군의 만행을 목격한 그는 17차례의 보고서를 통해 발칸반도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렸으나 반응은 언제나 차가웠다.

그는 18번째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최근 회교 정부군 장악지역인 투즐라를 방문, 스레브레니차를 탈출해 온 회교난민들을 만나면서 사임을 결심했다. 눈물을 삼키면서 동족들의 고통을 호소하던 난민들조차 이제는 유엔에 기대할 게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결국 『인권수호자라는 가면을 견딜 수 없음을 고백한다』면서 3년 가까이 맡아온 유엔인권조사단장직을 미련없이 던져버렸다.

그는 『국제사회가 보스니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유엔이 철수해야 한다면 보스니아 정부에 대한 무기금수해제 조치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변호사 출신인 마조비에츠키는 60년대부터 월간지 비에즈(연계)를 발간, 반체제 작가들의 작품을 게재하는등 반공투쟁의 선봉에 나섰다. 그는 81년 12월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자 1년간의 옥고를 치른뒤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인 레흐 바웬사와 함께 반독재 투쟁을 이끌었으며 89년 8월 총리로 지명돼 최초로 비공산계 정부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개혁의 속도와 폭을 놓고 바웬사와 갈등을 빚어 이듬해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바웬사와 격돌, 패배한 뒤 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이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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