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왕정」 표현 미지상대 67만불배상 승소/NYT 칼럼니스트 초청 공개논쟁 “제 2라운드”「아시아적 가치관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리관유(이광요)전 싱가포르 총리(72)가 서구적 가치관의 잣대로 아시아국가들을 거칠 것없이 비판해오던 서방언론에 본격적인 도전장을 던지며 이론투쟁을 벌이고 있다.
싸움의 1라운드는 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과의 명예훼손을 둘러싼 법정투쟁. 이전총리는 IHT가 지난해 8월2일자에서 싱가포르정부가 왕조정치를 하고 있는 것처럼 「냄새」를 풍기는 글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고촉통(오작동)총리와 장남인 리셴룽(이현룡)부총리등과 함께 자국법정에 IHT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 싸움은 지난 26일 싱가포르 대법원이 이전총리측 주장을 받아들여 IHT에 미화 67만8천달러 배상판결을 내림으로써 이전총리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다소 엉뚱했다. 지난해 IHT의 필립 바워링 기자가 「중국 공산당 정권이 싱가포르 왕정처럼 정권을 세습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쓰자 당사자인 중국보다 이전총리가 발끈한 것이다. 장남 리셴룽이 국방장관에 이어 부총리로 고속승진한데다 차기총리로 공공연히 지목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여긴 것. 이에 IHT측은 즉시 사과문을 게재, 물러서는 듯 했으나 독자기고란에 「아시아의 일부 정권이 사법부를 시녀화해 야당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싣는 바람에 싸움은 결국 화해불가능한 지경까지 가고 말았다.
이 기고문이 특정국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 이전총리가 문제삼은 데 대해 서방언론들은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식으로 논평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싸움의 2라운드는 이같은 논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사파이어가 싱가포르를 권위적 독재국가라고 성토하며 「싱가포르 때리기」에 가세했다. 사파이어는 지난 10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유교적 가치관이란 미명으로 언론과 정치탄압등 독재를 정당화한다며 싱가포르를 비난했다. 그러자 고촉통총리가 『싱가포르를 비난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공개토론을 해보자』며 사파이어를 초청했다. 이에 사파이어는 토론상대로 이전총리를 지목하며 수락의사를 밝혔다. 싱가포르의 정치·사회체제를 놓고 동서양의 논객이 맞붙게 된 셈이다.
동양의 가치관을 역설하는 이전총리는 지난 59년부터 90년까지 31년간 총리를 지내면서 인구 2백80여만명의 싱가포르를 동남아 최고의 부국으로 만든 인물. 실용주의적 우파철학을 견지, 근대화를 주도하면서도 사법 인권등에서는 한사코 서구의 기준 적용을 거부하고 있는 그에게는 「계몽된 독재자」란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이전총리가 서구적 가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사파이어를 맞아 「싱가포르적 가치」를 어떻게 정당화할지 궁금하다.<배연해 기자>배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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