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잔재 벗자” 한 공예가의 30년 몸부림/우리것의 소중함 심어주는 동화로 그려이 장편동화는 한 공예가가 걸어온 길을 쓴 이야기다. 왜정때 일본에 가서 일본사람 스승한테 3년동안 인형 만드는 재주를 배워온 이수동은 돌아와 인형가게를 차린다. 그런데 어느날 한 나비학자한테서 그 인형들이 일본인형이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고, 개성박물관장이었던 고고학자 고유석선생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으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겨레의 모습을 인형으로 빚 어 낼 수 있을까 하여 온갖 책을 읽고 고적을 찾아 다니다가 해방이 되어 경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석굴암을 비롯한 고적과 푸른 하늘을 보고 비로소 우리 겨레의 참 모습을 찾아 내게 된다. 이 공예가는 3년동안 몸에 밴 일본인형만드는 버릇을 고치는데 30년이 걸렸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곧 머리에 떠올린 것이 왜놈들에 짓밟힌 우리 말이다. 우리는 36년동안 일본말 일본글로 살았다. 그래서 우리말 속에는 일본말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고, 일본말이 우리말의 뿌리를 뒤흔들어서 아주 괴상한 꼴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고, 사실을 알려 주어도 말버릇 글버릇을 고칠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람은 말로 생각을 하고, 사람의 정신은 말에 있는데, 병든 말로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는가? 바위에 박아 놓은 쇠말뚝은 뽑으려고 하는데 저마다 머릿속에 박힌 쇠말뚝인 일본말 버릇은 고치려고 안하니, 이래서는 민주고 통일이고 다 헛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동화는 내가 아주 존경하는, 실제로 살아있는 분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읽는 동화는 대부분 서양동화가 아니면, 그저 뜻없이 웃기려고 하거나 귀신이야기 같은 것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려고 하는 상품으로 되어있다.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드문 형편에서 우리 겨레의 마음을 심어주는 이런 좋은 동화책이 나온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인형이라는 장난감을 만드는데도 제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정신 그 자체를 나타내는 말과 글에서 남의 나라 말과 말법으로 어찌 하겠는가? 35년동안 몸에 밴 일본말의 독소를 뽑는데 3백년이 걸리더라도 기어코 우리 것을 지켜야 하겠는데, 분단 50년은 적어도 말과 글에서는 35년의 연장이었으니 우리가 할 일이 참으로 아득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정신만 차리면 역사를 앞당길 수도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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