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노출 꺼려 구입기피 열악한 현실 치명타/“정신문화의 산물 투기품 취급에 더 큰 비애감”미술품 거래에 대한 과세는 가뜩이나 열악한 국내 미술발전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것이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의 여론이다. 문체부와 민자당의 무기연기 결정에 한동안 안도의 숨을 쉬던 미술계는 재경원의 과세고수 방침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양도세문제가 거론되면서 대다수 미술인들은 걱정에 앞서 비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당장 닥쳐올 경제적 손실도 문제이지만 정신문화의 산물인 예술품이 사치품내지는 투기품으로 취급받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경기가 유례없이 호황을 구가하던 80년대말 한때 극소수 작고작가의 작품가격이 급격히 상승, 부유층 일부에서 양도차익을 노리고 거래를 한 경우는 있지만 그야말로 극히 일부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그 이후 미술품투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미술품 매매에는 특별한 안목과 식견이 필요하고, 지난 4∼5년간 미술시장이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기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미술평론가 최병식씨는 『연간 1천억원으로 추산되는 미술시장에 투기성 유휴자금이 몰린다해도 이를 감당할 물량이 없을 뿐 아니라 예술작품에 대한 투자를 부동산 투기와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미술인들은 양도세가 시행되면 수요자의 거래기피에 따른 미술시장의 황폐화가 불보듯 뻔하다고 주장한다. 세금부과 대상이 2천만원 이상의 고액작품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작품의 거래명세서 제출이 의무화되는 상황에서 신분을 노출하면서까지 작품을 구입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10만원짜리 작품도 언제 2천만원대로 상승할지 모르므로 정확하게 거래자의 신원과 금액을 기록하고 이를 신고해야 한다.
세무당국은 미술품 거래동향과 이동과정을 손바닥 보듯이 알 수 있게 되고, 구입자는 언제든 자금출처조사를 받게 될 수 있다는 심리적 부담을 지닌다. 이러한 부담은 작품구입발길을 끊게 만들고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감퇴시킨다는 주장이다.
한 중견화가는 『국내화단에서 시장성있는 작가는 1백여명으로 전체 5%도 안된다. 나머지 95%는 그림을 팔아 겨우 생활하는데 화랑이 문닫으면 생계가 막막할 정도』라고 한탄했다. 또 현재 미술품은 은행담보도 안되는등 재산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선후가 바뀐 처사라고 항변했다.
미술인들은 또 세금부과의 부당성과 함께 심각한 부작용을 지적한다. 작품가격산정의 어려움은 접어두고 모든 작품의 관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가격조작과 뒷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술계는 양도세가 강행되면 작가나 화랑, 수집가등이 음성적으로 거래하게 돼 그나마 형성된 미술시장이 지하경제로 편입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공창화랑대표 공창호씨는 『거래물량이 거의 없는 고미술품은 해외로 유출되거나 암거래되면서 값이 뛰고 가짜작품이 나돌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현대화랑대표 박명자씨는 『몇년사이 값이 오른 대가들의 작품을 소유한 소장자들이 신분노출을 꺼림으로써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대형 전시회나 작고작가의 추모전 같은 기획전은 생각도 못하게 된다』고 밝혔다.
미술계는 따라서 『양도세 시행시기는 건전한 미술거래풍토를 유도하는 미술관법 제정과 경매제도도입 등을 통해 문화적 기반이 정착된 후가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과세 반대 미술계의 대안/거래 이익금중 일부분 출연/해외홍보·전업작가 지원 등 사용/“미술문화 발전기금 조성” 주장
미술계는 양도소득세 부과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예외없는 과세공평주의에 대한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미술계 일각에서는 양도세를 적용하지 않는 대신 미술품 거래에 따른 이익금의 일부를 출연하여 미술문화 발전기금을 조성하자는등 여러 대안들이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다. 이 기회에 미술계의 허약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스스로 마련하자는 것이다.
김영순(여·45)대유문화재단 관장은 대부분의 미술품 거래가 화랑을 통해 이뤄지므로 화랑이 중개 수익금을 책정할 때 양도소득세의 일정부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자발적으로 포함시켜 이 돈으로 기금을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각 화랑에 호텔처럼 등급을 매겨 등급별로 기금 납부액을 차등 적용하는 한편 조성된 기금으로 한국 미술의 해외홍보나 전업작가, 영세화랑 지원 등에 사용함으로써 비과세의 명분을 찾고 미술계의 고른 발전을 기한다는 취지다. 화랑 입장에서도 공신력이나 대외적 위상이 화랑운영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무리하게 등급을 낮춰서 징수액을 줄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김관장은 『화랑에 기부금 조성을 강제적으로 부담지울 근거는 없으므로 화랑의 자발적 조직 구성 및 참여, 징수액 결정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또 미술품 거래 차익에서 생긴 이익금을 미술품 구입이나 화랑 건립 등 미술과 관계된 일에 재사용할 때에 한해 비과세하는 방안, 현존 작가의 경우에는 양도세 부과 대신 부가가치세를 철저하게 적용하는 방안등도 거론된다. 작고작가의 작품은 더 이상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과 성격이 비슷해 양도차익에 과세할 만하지만 현존 작가의 작품은 계속 공급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일반 상품과 성격이 비슷해 부가가치세 적용이 더 타당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배득종(36)연세대행정학과교수는 『작고 작가의 작품에 양도세를 부과하려면 일단 등기화시키고 금융대출의 담보로 인정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하고 현존 작가 작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부과 역시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미술계는 어떤 식으로든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소득원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미술시장이 위축될 것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우선은 양도세 반대에만 치중하는 분위기여서 아직까지 대안들이 여론수렴을 거치거나 공론화한 상태는 아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문체부의 입장 및 방침/미술계 여건상 시기상조 판단/무기연기 법안 정기국회 제출
문체부는 문화예술 주무부처로서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가 시기상조라고 판단한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법안취지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현재 양도소득세의 영향을 무리없이 흡수할 만한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는 미술계의 의견에 공감하고 시행시기를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문체부는 지난 7일 민자당과 함께 당정협의를 개최하고 양도소득세 부과 시행시기를 내년1월1일로 규정하고 있는 법안의 부칙을 고치기로 했다.
즉 의원입법 형식을 통해 양도소득세 시행시기를 대통령령에 위임한다는 수정안을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것이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민자당에서도 미술계의 지적에 수긍하는 분위기여서 이같은 내용의 민자당안이 마련될 것으로 안다』며 『국회에서 통과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양도소득세 시행시기가 대통령령으로 위임되면 일단 무기 연기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문체부의 설명이다. 문체부는 원칙적으로 과세형평주의에 입각한 재경원의 입장도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재경원에 대한 설득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그러나 문체부는 미술품 가격현실화, 거래질서 확립, 미술의 대중화 등 과제를 제시하며 미술계가 빠른 시일내에 과세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구노력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김창실 선화랑 대표/세금 부과땐 영세작가·화랑 생계곤란
화랑경영 18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미술품이란 결코 돈있다고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술을 좋아하는 감성을 가진 사람만이 투자하는 대상이다.
예컨대 국내 굴지의 두 재벌이 있지만 한 곳은 40여년간의 기업성장과 함께 미술문화재단을 만들어 세계각지로부터 수만점의 미술품을 모으는데 비해 다른 한 곳은 아직까지 미술품에 투자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즉 한 쪽은 미술품 투자를 통해 부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문화유산을 국가대신 관리해주는데 반해 다른 쪽은 은행담보도 되지않는 미술품에 단돈 10만원도 투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엔 중산층 미술애호가들이 미술품을 구입하여 작가들을 돕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목돈을 마련하려 소장품을 팔려고 할 때 양도세걱정으로 작품구입을 포기한다면 작가들을 누가 도와줄 것이며 화랑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화랑은 다른 사업으로 전업하면 그만이나 고귀한 예술품을 창작하는 영세한 작가들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작품을 사주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 법을 폐지, 문화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우리문화계의 당면과제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박물관은 고작 20여개, 수족관과 학교박물관을 합쳐 겨우 3백여개이다. 일본의 9백여개, 미국의 4천여개에 비하면 너무 열악한 미술환경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미술발전에 한 몫을 하고 있는 중산층 미술애호가들을 불합리한 세금으로 인한 공포감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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