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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 갤러리 이콘 대표(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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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 갤러리 이콘 대표(발언대)

입력
1995.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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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민족 걸맞은 미술·박물관 절실/한나라 수준 척도… 외화내빈현실 부끄러워한 나라의 인상이나 품격등을 가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 나라의 박물관, 미술관 관람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개인이나 국가를 막론하고 명예나 정신적 가치보다는 경제력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요즘의 풍조속에서는 이같은 상식이 더욱 소중하다.

얼마전 국제로터리회의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에 갔던 길에 잠시 도심 한복판에 있는 아얄라 박물관을 찾았다.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동안 막연히 가난한 후진국으로만 알고 있던 필리핀이 문화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앞서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얄라 박물관은 우리의 종로 네거리쯤에 해당하는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편리한 위치, 철저히 준비되어 있는 소장품, 배경처리, 조명, 관람하기에 너무도 편안하게 설정된 동선, 순서를 빼놓지 않고 볼수 있게 되어 있는 효율적인 구조, 완벽한 보안, 정숙한 분위기등이 세계의 어떤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았다.

이 역사 박물관의 전면은 입체로, 후면은 배경 화면을 두 배 이상 크게 해서 어안렌즈 화면식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보는 기막힌 「연출」방식이었다.

전시1실은 해양국인 필리핀의 특성을 살린 「보트 룸」이었다. 온갖 배의 형태가 시대 변천에 따라 발전한 단계를 보여 주었다. 전시2실은 식민지 시대의 유물을 테마로 이들이 어떻게 필리핀 역사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전시3실은 현대미술을 다양한 장르에 걸쳐 3주 간격으로 바꿔 전시하고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구겐하임 미술관보다도 기능면에서는 더 우수한 것 같았다.

세계의 유수한 미술관들은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소장품에 따라 전시계획을 먼저 정한뒤 거기에 맞춰 건물을 지었다. 이탈리아의 시스틴 성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위해 건축됐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국립 현대미술관은 서울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과천 한 귀퉁이에 있는데다, 입구를 바로 앞에 두고도 넓은 서울랜드를 뺑뺑 돌아서 가야 한다.

빈약한 소장품, 전시공간과는 동떨어진 내부설계, 관람객의 동선이 무시된 전시, 비좁은 주차장시설등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우리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소장품이나 전시계획은 부실한 채 지붕과 대문만 화려하게 만들어 놓고 「세계 최고」 「동양 최고」를 외쳐대고 있다.

떠들썩하던 베니스 비엔날레의 자르디니 공원에 세워진 한국관은 한국예술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인지, 건축미만을 자랑하기 위한 건축물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받았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문화민족의 긍지를 살려 외국에 못지 않은 박물관, 미술관을 갖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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