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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설희관(메아리)

입력
1995.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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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는 현대판 신문고인 「신문고」가 설치돼있다.수많은 독자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열려있는 여론독자부 전용 팩시밀리(739―8198), 전화(724―2338), PC통신(하이텔 HANKOOK3, 천리안 ZHAN1, 포스서브HAN00001)이 바로 그 것이다. 이 신문고에는 거울처럼 사회상이 그대로 비친다. 국가적 중대사나 현안이 등장하면 전국에서 고성준론이 줄을 잇는다.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분노의 목소리로 질타한다. 검찰이 5·18관련 피고소·고발인 모두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란 생경한 결정을 내리자 PC통신을 통해 정치권보다 먼저 역사적 직무유기행위라고 비난하는 「성명」이 쏟아졌다. 한국인의 자존심과 긍지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삼풍대참사후에는 공무원부정 건설비리 등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투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 자랑스럽던 「아시아의 용」이 어쩌다 이무기로 전락할 신세에 처했느냐고 지적하는 소리는 차라리 탄식에 가깝다.

미국 미시간주에 거주하는 동포 이원훈씨는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는 글을 팩시밀리로 보내왔다. 삼풍참사현장의 사진과 함께 붕괴원인을 대서특필한 신문의 제목부터 조롱조여서 부끄러워 얼굴을 못들겠다고 했다. 부실공사라는 여러가지 단어대신 「뒤축닳은 구두를 질질 끌고 걷는」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하는」뜻인 「SLIPSHOD CONSTRUCTION」이라고 골라 표현하더라고 하소연했다. 지난주말 아침에는 주부한분이 찾아와 편지봉투를 수줍은듯 놓고 갔다.

23일자 소리면에 독자에세이로 내용이 소개된 김석렬(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씨의 투고였다. 건설업을 하는 김씨의 남편은 5년전 관급공사를 맡아 건물을 짓다 완공을 앞두고 치명적인 시정명령을 받았다.

마침 관련부처의 담당과장이 친구 남편이어서 부부는 갈비세트를 사들고 찾아가 『한번만 눈 감아달라』고 매달렸다.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야속했고 배신감마저 느꼈다. 그러나 김씨는 삼풍참사후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는 성경구절이 더욱 절실히 가슴에 와닿는다며 당시를 부끄러워 했다. 6·25를 상기하듯 「6·29 삼풍전쟁」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난지도에서 한점 혈육을 찾아헤매고, 「시신없는 영결식」이 엄수되는 이 여름을 잊지 말자. 나부터 회개하고 반성하자. 그리고 다시 일어서자. 신문사의 신문고가 한가해져 분노에 찬 글대신 아름다운 시와 수필이 쏟아져 들어오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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