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소외에 사랑의 싹 심어줘 올바른 「성직의 길」 인도나는 얼마전 그동안 몸담고 있던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직을 정년은퇴하였다. 이제 10여년전 정신지체아들과 함께 하던 일을 되찾아 설계하고 시도하려는 이 때에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자꾸 되뇌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성직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사제가 되어 올바른 목회가 뭔가 하고 고민할 때에도, 또한 서울교구의 주교가 되었을 때에도 성서가 나의 갈 길을 인도하였던 것처럼 한하운의 시는 나의 감성에다 대고 호소하였다.
내가 특별히 천형의 벌이라 불리는 문둥병을 앓던 시인에 대해 남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시에 애정을 갖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10년이라는 세월을 폐병과의 사투로 고생하면서부터이다. 나는 학창시절 아이스하키와 농구선수로 활동할 만큼 매우 건강하였다. 어느 날 시작된 예기치 않은 질병은 외로움과 절망을 알게 하고 동시에 사랑과 이해도 배우게 하였다.
1958년 지금의 성공회대학교 자리인 성공회신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그 당시 인천 부평에 나병환자보호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소년을 데려다가 같이 생활한 적이 있다. 물론 사랑으로 무장했다고 자부하며 시작한 일인데도 같이 잠자리에 들고, 한 식탁에 둘러 앉아 먹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후에 한하운시인을 신학교에 초청(돌아가신 조광원신부의 주선으로)하여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가 세상을 원망하거나 혹은 자기연민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시인은 무척 강건하였다.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보다 더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르게 보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의 시와 그의 문학이 그의 건강을 돕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질병과 가난과 소외가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있는 삶, 나는 그 삶이 어떤 것인가를 조금조금씩 보게 되었고,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갖게도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내 가슴에 보리피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운 고향을 갈 수 없는 사연을, 「피―∼닐리리」소리 속에 삭여진 한의 사연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하느님의 사역을 돕는 셈이 되었다.
경기도 마석에는 성공회 성생원교회가 있다. 음성나병환자들이 모여 살도록 만들어진 마을인데 작은 교회를 통하여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1984년 내가 주교직에 오른 후 나는 매달 한번씩 그곳을 방문하여 꼬박꼬박 미사를 집전하였다. 또한 나는 사제서품을 베풀 때면 반드시 새로운 성직자들과 음성나환자들의 성생원교회를 찾아가 그들과 함께 첫 미사를 드렸다.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니냐』하는 농담 아닌 농담을 들을 때도 있지만 즐거웠다. 질병과 가난과 소외에 대한 나의 편애가 나의 삶을 인도하고 성직의 길을 인도하였음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게 남겨진 일도 내 가슴에 「보리피리」가 울리는 한 바로 그 편애에서 비롯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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