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피랍·구출 이어 이번엔 대통령궁 피폭/독립선포로 내전… 회교정부 생존 어깨에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70) 보스니아 대통령은 20일 또 한차례의 고비를 넘겼다.
칼 빌트 유럽연합(EU) 중재자와 회담을 벌이고 있던 사라예보의 대통령궁에 세르비아계가 발사한 포탄이 떨어졌으나 무사했던 것이다. 92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에 의해 납치돼 하룻만에 구출된 사건 이후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참기 힘든 수모를 되풀이해 당한 셈이다.
이처럼 대통령이 세르비아계의 사정권안에 있는 현실은 보스니아가 처한 현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92년 내전발발 이래 영토의 70% 이상을 상실하고 명색이 수도인 사라예보는 세르비아계 점령지내에 섬처럼 고립돼 유엔이 규정한 안전지대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 또 20만명의 목숨이 내전의 포연속에서 사라졌고 국민의 절반인 2백만명이상이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트베고비치는 이같은 사태가 서방의 이율배반적 정책 때문이라며 맹비난을 퍼붓는다. 그는 『서방측이 보스니아에는 무기금수를 취한채 세르비아계의 공세는 방관만 하고 있다』며 싸울 수 있도록 무기금수조치를 해제하든지, 적절한 보호수단을 제공하든지 택일하라고 주장한다.
사실 소총과 박격포정도로 경무장한 보스니아 회교정부군은 탱크를 비롯해 중화기를 갖춘 세르비아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세르비아계가 점령한 두번째 유엔안전지대인 제파에 주둔했던 회교 정부군 병사들은 유엔보호군의 무기를 탈취해가며 버텨 보았으나 중무장한 세르비아계의 진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세르비아계는 세르비아공화국으로부터 안암리에 지원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대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최대 피해자가 된 이제트베고비치는 골수 회교 민족주의자다. 보스니아 북부 보산스키에서 출생한 그는 10대때부터 회교도의 권리옹호 단체인 「청년 회교도」클럽에서 활동했다. 뛰어난 이론가이기도 한 그는 70년 「회교도 선언」이란 논문을 발표, 회교국가의 창설을 주창함으로써 당시 유고연방내에서 일약 회교계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82년 이 논문과 관련, 공산정권에 의해 분파주의자로 낙인찍혀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공산체제의 붕괴로 89년 석방됐다.
90년 회교민주행동당(SDA)을 창당해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해 실시된 구유고연방내 보스니아공화국 총선에서 승리,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92년 2월 국민투표를 통해 보스니아의 독립을 선포하면서 내전은 발발했다.
내전 39개월째를 맞는 그의 어깨에는 보스니아 회교정부의 생존이란 무거운 짐이 얹혀있다.<배연해 기자>배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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