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명사아닌 동사” 역동성 강조/신화·존재론·기능적 발전단계 제시우리는 「문화」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을 다분히 추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실제 생활 위를 겉도는 분위기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어떤 현상을 애매하게 뭉뚱그려 말할 때 문화라는 이름을 붙이길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가령 압구정동일대의 여러 번화한 모습을 가리켜 압구정문화라고 한다든가 요즘 부쩍 대중적 관심을 끌고 있는 단전호흡, 기공체조, 선도수련등을 일괄하여 기문화라고 한다든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화란 정태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다. 근대 중국의 5·4문화운동은 수천년래의 봉건적 관념을 타파하고 자주국가로의 변신을 기도하였던 절실한 몸부림이었으며 얼마전의 문화대혁명은 극좌이데올로기와 마오쩌둥(모택동) 개인의 야욕에 의해 중국전역이 집단히스테리에 빠졌던 현대판 분서갱유의 재난이었다. 80년대의 중국대륙에는 「문화열」이라고 부르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현대화의 추진을 둘러싼 열렬한 쟁론이 있었다. 우리 학계에서도 최근 급격히 부각되고 있는 대중문화에 주목하여 여러 각도에서의 진단과 논의가 행해지고 찬·반의 공방전이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이 모두가 문화를 실제적인 힘의 차원에서 인식토록 하는 사례들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앞으로 국가간, 지역간의 대립이 문화적 충돌의 형식을 취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는 동아시아문화의 대표로서 중국과 일본을 꼽기도 하였다. 그의 말이 다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앞으로의 세계는 다양한 문화가 어떻게 공존의 길을 모색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문화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다.
얼마전 내한한 바 있는 네덜란드의 석학 반 퍼슨교수가 지은 「급변하는 흐름속의 문화」(강영안역·서광사간·1995)는 이러한 문화의 개념을 역동적이고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는 우선 문화를,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서 규정한다. 다시 말해 문화는 우리 자신의 활동이고 우리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인류의 문화발전모형을 신화적 단계, 존재론적 단계, 기능적 단계의 세 가지로 제시하고 명쾌하게 각 단계를 설명해 나간다. 그에 의하면 기능적 단계에 와 있는 우리의 문화는 기계적인 조작주의의 위험에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고 다양한 지구촌문화의 결실을 위해 그는 상호작용의 윤리의식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요즈음 나온 문화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 딱딱한데 비하여 이 책은 저자의 각별한 배려하에 입문서처럼 쉽게 쓰여졌다. 신윤복의 풍속화까지 활용된 1백60개에 달하는 도해는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해줄 뿐만 아니라 저자의 풍부한 식견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중문과 교수>중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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