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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친목·민원수렴 「사랑방」 역할/반상회 어떤일을 하고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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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친목·민원수렴 「사랑방」 역할/반상회 어떤일을 하고있나

입력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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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현안 토론통해 이해조정 창구로/회보 자율적발간 생활정보지로 인기지난 93년 서울 강서구 신정7동이 쓰레기 분리수거시범지역으로 결정되자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12단지 주민들은 반상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당번을 정해 환경미화사업과 쓰레기 분리수거작업을 벌여나갈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율적으로 동네가꾸기 작업을 모범적으로 해왔다고 자평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같은 성과가 반상회 덕분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동네가꾸기 작업에 불참할 경우 벌금을 내야하지만 반상회에 나가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고 다음부터는 더 열심히 해나가자고 다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웃하고 있는 신정6동 아파트 주민들은 반상회에서 기금을 조성, 이웃에 경조사가 생기면 부조금으로 사용하는등 웬만한 친목계 이상의 자율적인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양천구청 문화공보실장 안효대(56)씨는 『얼마전 우리아이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는데 동네 주민들이 반상회에서 돈을 모아 위로금으로 건네주었다』면서 『큰 돈은 아니었지만 끈끈한 이웃간의 정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반상회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는 양천구의 경우 반상회보 편집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열의도 꽤 높다. 명예 주부기자들이 반상회보에 실릴 각종 현안 기사를 작성한다.

취재는 반상회에서의 열띤 토론을 벌이면 자연히 해결된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생활정보 안내 외에 정부시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기사 따위는 거의 없다.

반상회에서는 또 각종 주민고충사항을 모아 동사무소에 보내고 동사무소에서는 이를 구청의 해당부서로 전달한다.

『아파트주변 나무에 벌레가 많다. 약을 쳐달라』『아이들이 등교길에 이용하는 건널목에 신호등을 설치해달라』『아파트주변 자동차소음을 줄일 대책을 세워달라』같은 것들이다.

양천구의회 의원 이혜경(36)씨는 『매년 가을이 되면 동네주변에 심어 놓은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가 반상회에서 나눠먹는다. 이처럼 반상회에 얽힌 좋은 추억이 많은데 무조건 없애는 건 잘못된 것같다』고 주장했다.

11년동안 통·반장을 지낸 김정자(54)씨는 『반상회마저 없어지면 아무도 지역현안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같다』며 『생활정보를 얻기도 힘들어질 것이고 이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주민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상회 19년의 역사/새마을운동 명목 유신때 등장/80년대말 관서 민간주도 전환/정권홍보 탈피 자치기구 정착

전국 동시 반상회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지난 76년5월31일. 내무부는 그해 5월부터 매월 말일을 「반상회의 날」로 정해 반별로 1세대 1명이 참석하는 반상회를 열도록 지시했다.

서릿발같았던 당시 「유신정권」이 반상회를 열도록 하면서 내세운 첫번째 목적은 새마을운동의 활성화. 사실 그때까지 매달 1일은 「새마을의 날」이었다. 「새마을의 날」 하루전에 반상회를 개최함으로써 주민들이 이튿날에 할 일을 정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의 행정지시사항을 반이라고 하는 말단 행정조직까지 전달하고 정권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훨씬 컸다. 5공들어 반상회의 날이 매달 말일에서 25일로 바뀌었지만 권위주의 정부의 정권홍보수단으로 사용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거철만 되면 반상회는 여당후보들의 또다른 유세장이 됐던 게 사실이다.

반상회에는 주민건의사항 수집이라는 명목으로 구청이나 군청, 읍·면·동사무소에서 나온 공무원이 참석해 주민들의 출석상황까지 체크했다. 주민출석률을 높이기 위해 반상회시간중 민방위훈련을 실시토록 하는가 하면, 반내 저명인사를 명예반장으로 위촉해 반상회를 주도케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국영기업체 임직원의 경우 반상회에 반드시 참석해 정부정책을 홍보토록 독려받았다.

80년대말 6공정부는 그때까지 관주도로 이뤄져 왔던 반상회를 민간주도로 전환했다. 정부시책홍보로 일관해 왔던 반상회보의 내용을 바꿔 지역소식위주로 편집토록 했고 매달 1회씩 열되 개최일자나 시간은 주민자율에 맡겼다. 반상회 출석률도 더 이상 파악하지 않기로 했다.

또 92년 대통령선거때부터는 선거일을 앞둔 달의 반상회는 열지 않기로 했다. 공무원의 참석도 없앴다. 상당한 변화였다. 이를 계기로 반상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크게 줄어들었다.

아직도 반상회보에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시책을 홍보하는 내용이 실리고 있지만 주민생활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내용이 주로 실린다.

과거 일률적으로 「반상회보」라는 제호를 사용해 왔던데서 탈피해 「강남구 소식」 「대추마을 소식」등 이름도 다양해졌다.

내무부는 반상회의 주요기능으로 주요 국정이나 시·군·구정을 홍보하는 역할을 빼놓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진이나 홍수, 대형재난 발생시 주민들에게 행동요령을 알려주는 통로가 될 수 있고 주민들의 생활민원을 수렴하는 기능도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갈수록 소원해져 가는 이웃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지역주민간에 생활정보도 교환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가 반상회라는 얘기다. 내무부는 이같은 순기능을 놓아둔채 과거의 정치적 악용사례 때문에 반상회를 없애는 것은 너무 단순한 논리라는 입장이다.

최소한 주민들의 대정부 건의창구로서의 역할이나 친목회 정도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존속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현재 내무부의 의견이다.<박정태 기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황순심 성남시 은행1동반장/바쁜 도시생활속 이웃간 유일한 「대화의 장」

바쁜 사회생활과 자기들만의 시간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이웃간의 정이 없어진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웃간 대화창구는 반상회라고 생각한다.

또 다원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터져나오기 십상인 무분별한 주민요구사항을 조절해 마을단위의 의견으로 수렴하거나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싹트는 공동체의식등의 장점만으로도 반상회는 그 역할을 충분히 갖고 있다.

우리반은 두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지만 진지한 토의를 거쳐 마을버스를 유치했고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통해 제법 회비도 마련하고 있다. 삭막한 아파트 단지이지만 이웃들은 고향마을처럼 생일이나 경조사에 고락을 함께 나누고 있고 아이들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다른 동의 통·반에서도 소독·난방등의 반단위 현안해결과 생일축하, 인사나누기등을 통해 고향의 이웃처럼 반조직을 활성화해 나가고 있다.

반상회가 갖고 있는 이같은 이점때문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다 맡기를 싫어하는 반장을 3년씩이나 해올 수 있었다.

요즘 반상회는 과거와 달리 의무적으로 참석해 바쁜 시간을 빼앗기는 그런 모임이 아니라 시골집 사랑방처럼 즐거이 모여 기쁘게 헤어지는 모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김기연 경실련 연구부장/자치시대 기초의원들 중심 조직재구성 필요

최근 동을 폐지하고 구 행정단위로 일원화해 정부통제를 완화하고 주민자치를 활성화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유신시절 통·반단위까지 조직을 만들어 주민들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으로 만들어진 반상회 제도는 더 이상 존속할 이유가 없다.

군사독재시절 정부는 평화의 댐건설과 같은 정부주도사업을 선전하고 군중동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반상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반상회 본래의 목적인 순수한 주민단체로서 주민의 의견을 모아 민의를 정부정책에 반영하는 메커니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반장이 반상회를 통해 여권후보자들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여러가지 탈법을 일으키는 폐단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관변적 성격으로 반상회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 최근에는 주민들의 참여가 거의 없는 상태다. 이제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관변성향이 강한 반상회를 폐지하고 기초의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주민자치조직을 재구성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정기적인 모임은 자제하고 현안이 있을 때마다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민·기초의회·기초자치단체 3자간의 공감대형성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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