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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의 보고 「진시황 병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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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의 보고 「진시황 병마용」

입력
1995.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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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여점 살아있는듯이 독특한 모습·표정/발굴 22년째… 완전 복원까지 100년 더 소요74년 봄 우물을 파던 중국농부들에 의해 발견돼 2200여년만에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온 세계를 놀라게 했던 진시황 병마용. 21년이 지난 지금도 발굴작업은 계속되고 있지만 중국정부는 그 완전한 발굴·복원에는 1백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병마용갱은 산시(섬서)성 림동현에서 동쪽 7.5 지점에 있는 진시황릉의 서쪽1.5에 자리잡고 있다. 진시황릉과 그 주변 능원이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 지상왕조의 복사판이라는 시각에 의하면 병마용은 진왕조 당시의 수도 요지를 수위하던 숙위군 군진의 재현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현재까지 발굴순서에 따라 3호까지 공개되고 있는 병마용갱의 규모는 2만㎡.

품자형으로 배열된 3개 갱은 진왕조 당시 군진편성대로라면 3호갱이 지휘부격이고 1호갱이 우군, 2호갱이 좌군이 된다. 중군은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제국건설후 15년만에 붕괴한 진왕조말기의 농민반란으로 미처 건설계획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하5깊이 폐쇄갱에 묻혀있던 8천여점의 토용 토마등 각종 유물들은 중국인의 자화자찬이 아니더라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1.8∼2 크기로 하나하나가 모두 표정·모습이 다른 토용은 원래는 채색돼 있었다. 하도 생생한 모습에 중국인들은 『쓰촨(사천)출신 젊은이, 북방 초원에서 온 유목민, 관중에서 온 농부까지 알아볼 수 있다』할 정도.

병마용의 건조기간은 진시황릉의 건축기간과 대체로 일치하는 기원전 221∼21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시황이 통일직후 시작해 그가 병사할 때까지의 기간이다. 지하구조물의 불탄흔적은 진왕조 멸망후 기원전206년 초의 항우군이 불질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 의하면 진시황릉은 38년간 70만죄수의 노역에 의해 건설됐다. 병마용도 그에 맞먹는 노동력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인들은 『요컨대 병마용예술은 중국 고대 근로자들이 인류문명보고에 바친 하나의 눈부신 명주』라고 해석한다.

흥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는 처음 병마용을 발견한 농부들이 부서진 토용을 갖다바쳤더니 당국은 30위안(원·한화 약 3천원)을 우물공사 지연에 대한 보상과 장려금으로 주었다는 것이다.<시안=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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