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동산실명제서 예산편성까지/민자「현실」 앞세워 유보·완화 주장/정부“국민적 합의… 예정대로 시행”정부와 민자당이 주요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심한 대립상태를 보이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꾸준히 추진되던 일련의 「경제개혁」조치들이 막상 실시를 앞두고 거센 역풍을 맞고 있는가 하면 정부의 기본방침에 민자당이 느닷없이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민자당은 문민정부의 대표적인 경제개혁조치인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등에 대해 「현실」을 앞세워 유보 및 완화를 주장하고 있고 미술품등에 대한 양도소득세과세에 대해서도 연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경제팀 총수인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반대했던 영업용택시에 대한 부가가치세 감면을 하룻만에 뒤엎고 지난해 유보됐던 주세법개정안을 충분한 토의없이 통과시킨데 이어 이번에는 내년도 예산편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민자당은 지난달 지방선거 결과를 내세우며 『경제개혁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되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예상치 못했던 몇몇 사안을 고치자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민적인 합의를 거친 핵심 경제정책을 시행해보지도 않고 수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재정경제원의 한 관계자는 『민자당 의견대로 될 경우 이는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을 초래할뿐 아니라 앞으로 「경제」는 없어지고 「정치」만 남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요 쟁점사항을 정리해 본다.
▷금융실명제◁
민자당은 내년 1월1일부터 실시될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앞두고 은행에서 예금이 빠져나가는등 불안심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며 유보 내지는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종합과세를 5년정도 유보하자는 주장에 대해 개혁의 후퇴라는 비판이 있자 완화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민자당은 지난 15일 열린 경제정책간담회에서 종합과세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이자소득이 분리과세되는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만기 5년이상 개발신탁수익증권 및 예·적금에 대한 분리과세 허용과 시중은행에 대한 5년이상 금융채 발행 허용, 기존 세금우대저축 가입자에 대한 세금혜택 유지등이 거론됐다.
반면 정부는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금융실명제의 성공적 정착을 좌우할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제도변경은 있을 수 없다며 예정대로 실시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재경원 관계자는 『종합과세를 실시해도 금융소득이 1억9천만원미만인 사람은 세부담이 줄어들고 주식매매차익 비과세, 장기채권에 대한 분리과세 허용등 보완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에 큰 문제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실제 종합소득과세대상은 당초 예상의 절반수준인 5만명정도로 추산되어 과세기준을 상향조정할 경우 과세대상자가 더욱 줄어들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부동산실명제◁
민자당은 7월부터 실시된 부동산실명제로 농지거래가 위축되는등 부동산거래 자체가 큰 타격을 입고 있을뿐 아니라 명의신탁과 관련된 전과자가 양산되는등의 문제가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농지거래 위축은 내년부터 새로운 농지법이 시행되면 완화될 것으로 보여 부동산실명제가 그 원인은 아니며 시행된지 한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보완책이 거론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또 명의신탁에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었기때문에 혼란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예산편성◁
정부는 내년도 예산편성의 기본을 긴축기조 유지에 두고 있다. 아무래도 물가에 불안요소가 남아 있는만큼 안정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세입내에서의 세출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긴급하지 않은 사업비지출은 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1조7천억원에 이르는 세계잉여금을 정부 빚을 갚는데 사용하겠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민자당은 정부가 물가안정을 지나치게 의식해 복지분야 및 사회간접자본, 지역사업부문등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잉여금도 우선 시급한 이같은 투자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품양도세과세◁
내년 1월1일부터 실시될 서화 및 골동품에 대한 양도세 과세에 대해 민자당은 미술계의 반발을 받아들여 무기한 연기를 들고 나왔다. 미술품에 대한 과세는 거래를 위축시켜 결국 창작의욕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이같은 주장에 대해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 문제는 법이 제정된 지난 90년이후 미술계의 반발등으로 그동안 2차례나 시행이 연기됐지만 내년부터는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실시됨에 따라 실명제 성공과도 직결되어 있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동산투기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응징하면서도 비슷한 불로소득인 미술품 양도에 과세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과 공정성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토초세 폐지◁
민자당은 그동안 많은 민원을 유발한데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일치 판정을 내렸던 토지초과세를 폐지하는 대신 종합토지세의 세율 및 과표를 조정해 토지투기를 억제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헌법불일치 판정이 내려졌던 지난해 이미 명백한 입장을 밝혔다. 홍재형 당시 재무부장관은 지난해 8월 국회 재무위에서 『토초세는 땅값 급등지역을 중심으로 최소한 운영되며 투기억제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종토세나 양도세 강화가 토초세의 대안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못박았다.
▷주세법◁
지난해 국회에서 자유경쟁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유보됐던 주세법 개정안이 지난 15일 국회를 통과했다. 지방 소주사를 보호하기 위해 도매상에 대해 50%이상의 자도주 판매를 의무화했다. 재경원은 판매량에 대해 인위적으로 제한을 가하는 것은 문민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어긋날뿐 아니라 위헌요소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줄곧 표명해왔다.
이밖에 재경원은 지방선거직전 조세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택시회사에 대한 부가세 감면을 반대했지만 결국 민자당 의견대로 되고 말았다.<이상호 기자>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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