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신화한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슬픔 참담한 시어로 반문상반기에 수십 권의 시집이 쏟아져 나왔다. 유별나게 시집이 많이 나오는 나라, 그리고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에서 최근 대량생산된 시집들은 소위 「신세대」 문학인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김소연 성미정 심보선 이태흠 이응준 이창민등 67년부터 70년 어간에 태어난 젊은 시인 6명은 「신세대 젊은 시인들의 담론」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시학」 6월호에 실린 좌담에서 자신들을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 시를 쓰는 첫 세대」라고 말했다.
「신세대」를 자부하는 일부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어떤 생산적이고 급진적인 문화나 정치적 실천을 내오려는 노력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쓸모없는 문화적 룸펜」이라는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실천적인 문학은 물론이요 정신적 긴장의 분실로 인해 서정성도 발붙이기 힘든, 억압기제가 사라진 사회」를 살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첫 시집을 낸 66년생 동갑내기 박청호와 허연도 이같은 시대정신의 포위 속에서 시를 쓰는 젊은이들이다.
박청호는 시집 「치명적인 것들」(문학과지성사간)에서 성스러운 것들이라고는 하나 남아 있지 않은 황폐한 세계를 비유와 상징으로, 또는 직설적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처녀같은 나무들이 서 있었다」는 신성한 공간인 「숲」과 「순결한 나무」들이 처형당하고 불타 없어지는 모습으로 남거나, 정화의 상징인 「우물」이 「참수당한 얼굴이 빠져 있는」 훼손된 공간으로 변한다. 제 모습을 잃은 이런 공간들은 또 다른 시편에서 이야기하는 「서울, 찬란한 고해」의 현장이거나 「우리가 믿음으로 천국을 세웠을 때 거기/아무도 살려 들지 않았던 것」처럼 썩은 이론들이 지배하는 자리로 보인다.
그 참담한 세상의 모습은 죽음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날 왜 살려두었는지 자백받아야/살지 도저히 이대로는」이라는 삶의 의미에 대한 공격적 성찰에서부터 「뭐 자살하자구?/또?/벌써 열번째 죽는거야」라는 농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시에 나오는 죽음의 시어를 통해 그는 황폐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묻고 있다. 그런 태도는 소모를 전제로 만들어진 일회용품이 그렇듯이 죽음·폐기를 동반한 상품사회의 가치관이 가져다주는 위기감, 존재의 불안이 반영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불온한 검은 피」(세계사간)를 낸 허연도 세상을 황폐된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한 걸음 나아가 지저분하고도 가난한 도시의 구석구석과 한 몸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과 타인의 실존적인 슬픔을 더 짙게 느끼고 있다.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고/어떤 꿈도 몸에 맞지 않았다/우리는 늘 그리워했으므로/그리움이 뭔지 몰랐고」(「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와 같은 세상과의 불화, 「벽제행」 「불간섭」에 나타나는 무심한 태도는 그가 바라본 세계와 삶을 잘 알게 한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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