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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의 「발전소」/욕망의 희극과 비극/황현산(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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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의 「발전소」/욕망의 희극과 비극/황현산(시평)

입력
1995.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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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자신의 록카페에 「발전소」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그 사람의 상상력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는 도시의 일상생활에서 기력을 잃은 감정에 갑작스런 에너지를 확충하고 억압된 감정을 일거에 활성화할 어떤 장소를 꿈꾸거나 또는 그런 꿈을 착취하려 한다. 바로 이 록카페의 이름에서 제목을 가져왔다는 하재봉의 시집 「발전소」는 한 번의 스캔들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욕망의 주체이자 대상일뿐 다른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하재봉이 말하는 발전소는 생명의 태양을 모델로 삼는 인공기계들이며, 성적대상으로서의 여자들이며, 무엇보다도 여자의 자궁이며, 그 현란함과 어두움으로 태양과 자궁을 동시에 닮은 록카페와 레게바이다. 그것들은 모두 「발전」한다.

그러나 이 시대는 발전소는 수력이나 화력같은 자연력을 이용하지 않으며, 원자력을, 「핵」을 이용한다. 이 핵이 여체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말하자면 이 욕망하는 기계들은 스스로를 동력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소비한다. 이 반자연주의를, 문화의 한 징후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살고 있는 이 시가 반사회적일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구어를 문어화하고 문어를 다시 방종한 구어로 일탈시켜 그 둘을 동시에 교란하는 이 산문시들은 그 반사회적 어조에 의해 뛰어난 활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 반사회성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발전소에 문제가 있다면, 발전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시인이 미국 매파 상원의원에게 던지는 것으로 가정되는 질문이다. 발전소는 발전소이지만 발전은 발전으로 읽으라는 것이 시인의 의도다. 사회가 미래를 들먹여 발전소를 위협한다는 점에서만 그는 반사회적이다.

한편으로는, 발전소를 찾는 사람들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발전소는 자주 영업을 정지하거나 폐쇄되며, 거의 언제나 「4」밖에 있다. 때로는 발전소가 고고학적 탐구의 대상이 됨으로써 벌써 그 패망이 예고된다. 발전소의 반발전적·퇴영적 성격은 제도의 억압때문이기보다는 도리어 생존의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채 그 스스로 미워하는 다른 제도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발전소족들은 활력을 원하지만 생명을 불신하며, 자궁을 탐하지만 탄생을 두려워하며, 자유를 사랑하지만 성장을 기피한다. 이 점에서, 시집 「발전소」의 활력은 시인이 담지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하며, 그 반사회성은 하나의 문화가 초래한 본성과 순진성의 상실에 대한 당혹감의 표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하재봉의 「발전소」는 훌륭한 시집이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다. 욕망의 희극과 비극이 적절히 어울려 있다.<문학평론가·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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