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사태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사건발생 15년, 수사착수 1년2개월만에 드디어 내려졌다. 결정내용은 「공소권 없음」이라는 것이어서 전직 대통령들의 통치행위와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불가피한 현실적 한계를 또 다시 노출했다 하겠다.이번 결정은 지난해 10월 검찰이 「12·12」사태에 대해 기소유예결정을 내린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당시에도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나 심판을 역사에 맡기자고 했던 문민정부의 정치적 해법에 결과적으로 따랐었는데, 이번 경우에도 다름이 없다. 「광주의 희생이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고 오늘의 정부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5·18을 정의, 민주화운동으로 격상시켰으면서도 역시 심판을 역사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공소권 없음」과 「기소유예」란 것도 법리상으로는 불기소의 범주에 함께 드는 것이어서 다를게 없다. 검찰의 이같은 판단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정권형성의 기초가 된 사실행위에 대해 사실상의 규범력을 인정해 사후 법적 인증을 해야 한다」는 법철학이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무너진 구 헌정질서에 근거해 새로운 정권과 헌법질서의 창출을 위한 행위들의 법적 효력이나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결국 사법심사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한 국민적 심판과정을 거친 통치권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사후에 사법적으로 번복할 경우 헌정질서의 단절을 초래, 정치·사회·법률적으로 중대한 혼란을 야기시킨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검찰이 진행해 온 두 전직대통령을 포함, 모두 2백80여명에 대한 조사와 트럭 5대분량의 방대한 수사기록이 「공소권 없음」이란 간단한 결론을 이끌어 낸 것을 생각하면 갖가지 감회도 없지않다.
15년전 5공탄생을 전후해 거듭 빚어졌던 12·12와 5·18의 상채기로 우리 모두가 안아왔던 무거운 역사적 짐과 불가피한 현실이 교차하면서 한편으론 허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도 심판은 역사에 맡겨졌다. 어찌 보면 그 오랜 번민과 복잡하고 방대했던 사법적 조사 자체야말로 이미 시작된 역사적 심판의 일부랄 수도 있을 것이다. 「공소권 없음」이라는 현실적 결정과 상관없이 그같은 쿠데타적 행위나 만행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국민적 공감의 재확인이야말로 바로 더할나위 없이 준엄한 역사적 심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떻든 직접 피를 흘렸던 광주의 상처는 남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의 가슴이 아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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