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80여명 조사기록 10만쪽 “사상 최대”/검찰 고위간부 집 등 시위대비 철야경계○…검찰은 「5·18 고소고발사건」의 수사발표시기를 3∼4차례 연기하며 「택일」을 고심했다.
검찰은 지난달 7일 마지막 조사대상자인 최규하 전 대통령의 조사가 불발에 그치자 5·18을 전후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사법처리를 위한 막바지 법률검토작업에 들어갔으나 6·27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선거이후인 7월8일께로 발표시기를 연기했고, 지난달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발생으로 발표시기는 현장수습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검찰은 발표 하루전인 17일 상오 출입기자단에게 「18일 발표」를 공식 통보, 『발표일이 정해지면 최소 4∼5일의 여유를 두고 통보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깼다. 더욱이 연휴 마지막날이어서 대부분의 기자들이 나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자실에 전화를 걸어 급박히 발표사실을 알려온 것도 택일이 황급히 이루어졌음을 반증하는 「정황증거」이다. 특히 이날은 검찰의 사법판단대상인 「80년 내란음모사건」의 당사자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정치재개를 공식선언하는 날이어서 『정치적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검찰 스스로 자초했다.
○…수사팀인 서울지검 공안1부는 장윤석 부장을 비롯한 검사 8명 전원이 지난 2월부터 매일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는 강행군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동안 검찰의 소환·서면조사를 받은 사람은 두 전직대통령등 피고소·고발인 58명을 비롯, 모두 2백80여명에 이르며 수사기록만도 12·12수사때의 1만7천쪽보다 6배나 많은 10만쪽에 달해 분량과 비중 양면에서 검찰사상 최고의 대형사건수사로 기록됐다.
피고소고발인중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 무려 5차례나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아 가장 곤욕을 치렀다.
○…장윤석 부장검사는 「공소권없음」결정 배경을 설명하면서 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까지 예로 들었다.
장부장은 『고려말엽 이성계가 최영장군의 명령을 거부하고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이를 계기로 조선왕조를 세웠다』며 『조선시대 들어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에 대해 처벌받지 않은 것과 이번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사막바지였던 지난 6월 한달간 매주 토요일 서소문 대검청사 8층 총장실옆 소회의실에 모여 밤늦게까지 회의를 여는등 수사결론을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김도언 검찰총장, 송종의 대검 차장, 최영광 서울지검장, 안강민 대검 공안부장, 한부환 서울지검 1차장,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 김재기 대검 공안기획관등 8명의 검찰간부들은 「불기소」결론에는 일치했으나 「공소권 없음」과 「혐의 없음」결정을 놓고 이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수사결론은 여러 과정을 거친 끝에 대검 간부들이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공소권 없음」으로 확정됐다.
○…이번 수사결과 발표와 관련, 김도언검찰총장, 최영광서울지검장, 장륜석서울지검 공안1부장등 검찰 고위간부와 수사관계자들의 집에 대해 경찰이 철야 경계를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수사결과 발표가 있기전인 지난 6일께 검찰이 불기소처분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자 재야단체의 항의성명과 시위가 잇따르며 「가택 화염병 습격설」이 나돌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
○…5·17 전국비상계엄 확대조치는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최규하대통령을 독대해 재가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검찰조사결과 당시 이희성계엄사령관과 주영복 국방부장관도 함께 배석해 재가를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전전대통령은 서면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고,나머지 두 사람도 소환조사에서 배석 사실을 숨겨 검찰의 애를 먹였다는 후문이다.<현상엽 기자>현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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