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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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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둘러라」(사설)

입력
1995.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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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금언 가운데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말이 있다. 일견 모순된 것같지만 졸속과 태만의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을 강조하는 이 금언의 지혜야말로 성질 급한 우리 국민, 그 가운데서도 특히 지도자들이 유념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성질 급한 것은 이제 국제적으로도 알아준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루시안 파이교수는 한국인을 가리켜 「동방의 아일랜드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성질이 급하다는 것이다.

물론 성질 급한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파이교수의 지적대로 다른 나라에서라면 수년이 걸릴 일을 수개월만에 해치우는 활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성질이 급하면 급한 만큼 졸속의 우를 범할 가능성 또한 커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성급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주택 2백만호 건설의 예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주택보급률을 향상한다는 정책목표 자체가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5천년동안 짓고 헐고 한 끝에 보유하고 있던 주택이 불과 4백만호 정도였는데 그것의 반에 해당하는 2백만호를 6공화국의 임기 안에, 그것도 도로 항만등 사회 간접자본을 대폭 확충하는 가운데 공급하겠다는 성급한 실적추구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서 모든 건자재가 공급부족을 겪게되어 신도시의 아파트는 물론 사회간접자본 또한 부실공사를 면하기 어려웠고 결국 같은 시기에 건설한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는 있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물론 삼풍참사는 설계·시공·감리·관리의 모든 면에서 허술했던 탓이고 이 자체가 졸속의 표본이지만 주택 2백만호 건설과 관련한 불량자재의 사용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졸속의 폐해는 비단 건설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외교나 정치에서도 유사한 예가 많다.

비근하게는 현정부가 추진해 온 개혁프로그램 또한 그렇다. 지나치게 성급하게 여러가지 개혁을 거의 한꺼번에 추진하는 바람에 개혁에 대한 반발을 불필요하게 확산시킴으로써 오히려 개혁이 위협받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임기중에 무언가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마무리짓겠다는 강박감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여겨진다.

특히 지도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일단 「위」의 뜻이 신속한 추진에 있다고 여겨지면 졸속의 부작용을 계속 들고 나올 아둔한 관료는 없게 마련이라는 점에 있다. 윗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더 없이 중요하다. 지도자가 견지할 태도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천천히 서두르는 자세일 것이다. 앞으로 있을 추가 개혁프로그램이나 통일협상에서는 훗날의 아쉬움을 남기는 일이 없게 천천히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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