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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간서 떠오른 「아버지 회초리」(어둠에서 빛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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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간서 떠오른 「아버지 회초리」(어둠에서 빛으로:2)

입력
199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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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나마 「넓은 가슴」 조금은 이해/어릴땐 사내애들 휘어잡는 “왈가닥”/목놓아 울고계실 어머니 생각에 “살아야겠다” 다짐어젯밤 어렴풋이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는데 이제 비가 그쳤나 보다. 간호사 언니가 커튼을 걷으니 한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지환이에게 햇빛을 보여주려고 장마가 잠깐 쉬고 있나보다』 『언니말이 맞나봐요』 정말 햇빛이 그리웠다. 매몰돼 있었던 13일 동안 가장 참을수 없었던 건 배고픔이 아니라 어둠이었다. 들것에 실려 나오면서 눈을 가린 수건을 살짝 제쳐 본 것도 그만큼 절실하게 빛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옴짝달싹 할 수 없었던 암흑의 공간. 그 속에 갇혀있는 동안 머릿속마저 어둠에 휩싸일까봐 얼마나 애를 태웠던가. 아름다웠던 기억들은 물론이고 안타깝고 부끄러웠던 옛일들까지 닥치는대로 떠올렸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매를 맞았던 일이 제일 또렷했다. 인수중학 2학년 때였던가? 중간고사 시험기간이었다. 엄마에게는 친구집에서 시험공부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하루종일 놀다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공부하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한 밥을 내놓으셨다. 죄스러운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밥을 먹고 있는데 함께 공부했다고 얘기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짓말이 고스란히 들통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손잡이가 긴 빗자루로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시퍼렇게 멍이 난 다리를 만지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야속했다. 『아버지가 저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요』 돼먹잖은 반항심도 생겼다.

내 종아리에 피멍이 들때 아버지의 가슴에는 얼마나 더 큰 아픔이 응어리졌었을까.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갑자기 생각났던 아버지의 말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지환아, 그 때 종아리 많이 아팠지』 과로로 몸져 누워계신 병원에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당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않으시고 그냥 내 손만 꼭 잡아주셨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넓은 가슴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운수회사 직원으로 높은 직위에 있지도 않았고 공부도 많이 하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성실과 정직이 가장 가치있는 덕목임을 내게 깨우쳐 주신 우리 아버지.

콘크리트 더미 사이로 흘러나온 물이 녹물이어서 그냥 입가만 적셔야 했을 때는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냥 이대로 내 삶도 끝나는가』 살아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달아나려고 할 때마다 주위사람들이 당찼다고 했던 어릴 적 내 모습을 애써 회상했다.

국민학교 입학 전에는 왈가닥 지환이로 통했다. 사내아이들까지 휘어잡을 만큼 힘도 셌던 것 같다. 여섯살때 쌍둥이 형제를 때려 엄마를 당혹스럽게 한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남자 아이 둘이 신기해 함께 놀고 싶어 말을 걸었다가 여자라고 무시하는 바람에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자라면서 예쁜 옷을 탐낼 때 마다 『조그만할 때는 사내같던 네가 웬일로 여자 흉내를 내려고 하니』라며 날 놀리셨었지.

허기에 목마름에 지쳐 저절로 눈이 감겨 잠이 들었을 때는 꼭 꿈속에서 엄마를 만났다. 늘 근심걱정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던 우리 엄마. 어머니는 내가 가끔 싸구려 브로치라도 선물하면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 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어서 엄마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딸은 아기자기 해서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말씀하실땐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엄마는 내게 매질을 한 뒤에는 항상 소리내어 우셨다. 망아지처럼 제멋대로인 딸이 걱정스러워서 였을 거다.

『이대로 잠이 든채 죽어갔으면…』 자포자기하면서도 목놓아 울고계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꼭 살아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지금 엄마가 곁에 안 계시는 걸 보니 아마 아버지가 누워계신 병원에 가셨나 보다.

하오가 되니 친구들이랑 고등학교 후배들이 잔뜩 찾아왔다. 돈도 없으면서 꽃다발, 음료수를 들고 병실문을 들어선다. 『지환아, 너 유명해졌더라』 건강한 내 모습을 보고 모두들 즐거운 표정들이다.

『얘들아, 정말 고마워. 너희들은 모를거야. 너네들이 얼마나 내게 힘이 되어 주었는지』

학교다닐 때는 뭐 그리 신나는 일이 많았던지. 도무지 책상에 눌러 앉아있기가 힘들었지. 리어카에 진열된 목걸이, 반지를 서로에게 걸어주고 끼워주면서 깔깔댔지. 학교앞 분식집에서 서로 입에 넣어주던 떡볶이 맛도 잊을수 없어.

퇴원하게 되면 우리 시원하게 차려입고 시내에 쇼핑가자. 이 리어카 저 리어카를 기웃대기도 하고, 분위기 근사한 곳에서 냉커피도 마시고.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주위가 다시 조용하다. 몇시나 됐을까. 간호사 언니들의 발걸음 소리만 나지막히 들린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장마가 한풀 꺾이긴 꺾인 모양이다.

이제 며칠밤을 더 보내면 혼자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다시 얻은 삶. 『밖에 나가면 정말 열심히 살거야』 내혼잣말을 들었는지 간호사 언니가 날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정리=이현주·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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