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 지금도 천장울리는 소리 들려요”/콘크리트 건물 생각만해도 끔찍해/동화속 신데렐라된 느낌 “쑥스러워”/병상아버지 얼마나 놀라셨을까… 앞으론 「진짜효녀」 돼야지13일간의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온 순간, 얼굴에 씌워진 수건을 걷어 제치고 찬란한 빛을 두눈으로 확인했던 유지환양. 유양은 건강이 빠르게 호전돼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고 미음과 수프를 거뜬이 비우는등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병상에 누워 조용히 앞날의 설계를 세우고 있지만 면회시간만큼은 예전의 발랄하고 명랑한 지환이로 되돌아 왔다. 새 삶을 얻은 유양의 심경과 병원생활,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이 교차한 지난 18년간의 생을 유양과 가족, 주변사람들의 입을 통해 세차례에 나눠 수기형식으로 정리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쿵쿵쿵」
천장에서 울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새벽 3∼4시는 됐을까. 초록색 수술가운을 입은 간호사들이 차트에 무언가 적고 있었다. 평온한 분위기였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쿵쿵쿵」다시 천장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담요를 재빨리 얼굴 위까지 덮어 쓰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빼꼼히 담요를 내려 간호사들을 살펴 보았다. 전혀 이상한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보구나』 괜히 나만 혼자 불안해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잠을 청했지만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창밖이 환해져서야 간신히 눈을 붙였다.
13일 상오. 간호사언니가 잠을 깨웠다. 『언니. 새벽에 천장이 무너지는 듯한 큰소리를 못들었어요』 간호사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더니 부드럽게 어루만져줬다. 『지환아, 아무일도 없었어. 이제 불안해 하지마』
미음을 먹고 침대에 누우니 손이 자꾸만 이마의 상처쪽으로 간다. 매몰 첫날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키다 50㎝ 바로 위의 철판에 부딪쳐 생긴 것이다. 『아, 이게 꿈이 아니구나.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되는데… 엄마, 어떡해요…』 끔찍했던 그 기억은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콘크리트 건물이 무섭다. 백화점근무를 다신 않겠다고 말한 것도 건물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상오8시. 면회시간이 되자 방문객들이 또 찾아왔다. 양복을 입고 여러사람을 거느리고 왔는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을 찍어대는 것을 보니 보통사람은 아닌가 보다.
○면회 쇄도 어리둥절
『퇴원만 하시면 환영파티를 대대적으로 열어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빨리 쾌차하세요』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아보인 그 어른은 내가 거북할 정도의 존대어를 섞어 쓰고 악수를 청한 뒤 곧 돌아갔다.
『내가 살아난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괜히 쑥스럽다. 광고나 TV에 나오라는 제의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과 잘 어울리며 재잘대던 성격이지만 많은 사람앞에 서서 각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영 내키지 않았다.
조간신문을 뒤적여 봤다. 신문마다 온통 내 이야기다. 동화속의 신데렐라가 된 느낌이다.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한 이야기, 회사를 다니며 아버지병간호를 한 이야기며 모든 신문들이 나를 「효녀심청」이고 모범생에 착하디 착한 소녀로 만들어 놓았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배를 잡고 웃을텐데…』 유명해지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너무 과장돼서 알려지니 괜시리 부담감이 들어 얼굴이 붉어져 왔다.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엄마가 곁에 앉아 손을 잡고 계셨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파리하다 못해 하얗다. 나를 돌보느라 며칠밤을 꼬박 새웠기 때문이리라. 『엄마, 정말 미안해요. 이제부터 잘 할게요』 미안함과 감사함이 가슴에 꽉 차 오르면서도 정작 엄마 앞에서 말이 잘 나오질 않는다. 『엄마!』하고 불러 놓고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는 고혈압이 나 때문에 도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나한테 이것저것 선물하지 말고 불쌍한 우리 엄마 병이나 고쳐주면 좋겠는데…』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왔다. 내가 콘크리트 더미 속에 있는 동안 얼마나 가슴이 천근만근 무거웠을까. 내 몸을 덮친 철근과 콘크리트 무게 이상이었을 거야.
엄마 생각을 하다보니 아버지 생각도 더욱 간절했다. 사고소식도 모르다가 구조소식을 들은 아버지. 얼마나 놀라셨을까. 퇴원하면 『나 왔어요. 좀 어떠세요』하고 아무일 없던 것처럼 까불면서 병실에 들어가야지. 아버지도 『어서 와라』며 담담히 나를 맞아주실거야.
○나와의 약속 지킬것
사고후 내가 좀 더 어른스러워진 것만은 분명한 것같다. 죽음의 그림자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 얼마나 지난 세월을 후회했던가.
아버지 어머니께 잘못했던 일, 학교 선생님께 꾸중듣던 일, 친구들에게 쌀쌀맞게 대했던 일등. 안타까웠던 일들만 자꾸 떠 올랐었지.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이제 칠흑의 어둠속에서 내가 스스로 약속했던 일을 실천해 나가는 일만 남았다. 난 이렇게 살아나왔으니까. 다시 태어난 것이니까. 신문이 써준 것처럼 진짜 심청이가 돼야지. 톡톡 쏜다고 핀잔을 주던 친구들에게도 이제는 다정한 지환이가 돼야지.
그래도 수다떨고 깔깔거리던 옛모습을 몽땅 지워버리지는 말아야지. 아무리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지환이는 지환이니까.<정리=장학만·염영남 기자>정리=장학만·염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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