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한 대응으로 비극상황 초래” 사임압력/“할수있는 일은 세계 달래는 것뿐” 침묵만『보스니아에서 유엔의 유일한 역할은 인질이 되는 것이다』
세르비아계가 유엔 안전지대 스레브레니차를 함락시키자 보스니아 정부는 유엔의 「무력」에 발끈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아카시 야스시(명석강·64) 유엔특사에게로 집중됐다. 보스니아 정부는 12일 아카시가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유엔특사직에서 사임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 대통령은 『아카시는 유엔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망설임의 결정체』라며 『그의 망설임 때문에 보스니아가 현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맹비난했다. 아카시가 세르비아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 전투기 등으로 적극적인 반격을 펴는 결정을 내리지 않은데 대해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보스니아정부의 반발에도 불구, 아카시는 유엔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세르비아계를 달래는 것 외에는 없다는 식의 맥빠진 입장만 견지하고 있다. 사실 유엔은 현재 보스니아사태에 군사적으로 적극 개입할 형편도 못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발을 빼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세르비아계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유엔은 지난 5월에 있었던 유엔평화유지군 인질사태에 이어 이번 스레브레니차 함락에 속수무책이었고 이로 인해 보스니아정부는 물론 유럽각국들로부터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보스니아사태에 강경입장을 고수해 온 프랑스는 스레브레니차 탈환을 위해 군사행동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있고 미국도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유엔의 결정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행동하고있는 세르비아계에 대해 유엔이 정면으로 맞붙을 경우 보스니아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유엔의 군사적 개입은 즉시 유혈사태를 유발하고 유엔군측 또한 엄청난 인명피해를 감수해야한다. 이와 함께 평화유지군의 개념을 「전쟁수행군」으로 변화시켜 다른지역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의 활동에 큰 지장을 받게 된다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엔군이 즉시 철수를 할 경우 이 지역은 고스란히 세르비아계의 손아귀로 넘어가게 된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채 퇴각하는 셈으로 유엔의 위상에 큰 먹칠을 하는 꼴이 된다. 아카시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도쿄(동경)대를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버지니아대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아카시는 57년에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엔의 직원이 됐고 지금까지 유엔근무경력만 33년째를 맞는 베테랑 해결사. 그러나 사임의 위기에까지 몰려 있는 아카시는 여전히 『이지역에서의 군사행동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반복할 뿐 각론에서는 계속 침묵, 보스니아 수렁에 빠진 유엔의 「무력」을 대변하고 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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