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석군과 유지환양의 기적적인 생환에 훨씬 앞서 구조작업 초기에 사지를 빠져나온 이행주(25·삼풍백화점 직원)씨, 홍성태(39·대원외고교사)씨, 서윤희(52·삼풍백화점 환경미화원)씨. 이제 이들의 얼굴에는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의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사고후유증과 싸워야 하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열흘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매몰순간을 생각하면 몸이 절로 떨린다』고 털어놓은 이들은 『나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라고 입을 모았다.◎51시간만에 구조 서윤희씨/심한 정신적 충격… 불면증에 시달려
동료 환경미화원과 함께 지난 1일 극적으로 구조된 서윤희씨는 겉으로는 정상인들과 다를바 없는 건강한 모습이다. 그러나 서씨는 사고당시의 끔찍했던 순간들이 잊혀지지 않아 현재 지방공사 강남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구조당시 이를 악물고 좁은 틈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전국민의 시선을 붙잡았던 서씨는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면서도 『눈만 감으면 선반위의 물건이 떨어지고 콘크리트가 「쿵」하고 무너지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란다』고 하소연했다.
서씨는 『사고 이후 눈이 더 침침해졌고 눈자위가 눌리는 것 같아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병으로 집에서 쉬고 있는 남편과 어떻게 살아가야될 지 앞날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 신영민(신영민·42)정신과 과장은 『서씨와 함께 구조된 대부분의 환자들이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악몽 무력감 불면증등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다』며 『3∼6개월동안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만큼 이에 따르는 정신적 피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윤태형 기자>윤태형>
◎28시간만에 구조 홍성태씨/신부전증 고생… 왼다리 아직 감각없어
B동 지하1층에서 28시간 만에 구조된 홍성태씨는 후유증이 아주 심한편이다. 붕괴순간 무너지는 콘크리트 더미에 깔리는 바람에 구조당시 출혈도 심했고 부상도 깊었다. 그래서 다른 구조자들과는 달리 10일 동안이나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현재 홍씨를 가장 심하게 괴롭히는 병은 급성신부전증이다. 담당의사는 『갑자기 무거운 물건이 덮치면서 장기가 손상돼 급성신부전증이 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체내의 노폐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아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구조당시 왼쪽다리와 왼팔이 마비된 상태였는데 다행히 왼팔은 감각이 돌아왔지만 왼쪽다리는 근육이 완전히 부서지고 감각도 없다. 건물이 붕괴될 때 오른쪽 옆구리를 장식장의 모서리에 찔려 여태껏 허리를 움직일 수 없다.
『침대에서 꼼짝도 할수 없어 아내가 하루종일 옆에 붙어 온몸을 주물러 주는등 병간호를 한다』고 말하는 홍씨의 얼굴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차 있다.
빨리 건강을 되찾아 외아들 민기(10)군에게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고싶다는 홍씨는『잠만들면 매몰당시의 고통스런 상황을 꿈꾼다』며 안타까워했다.<이현주 기자>이현주>
◎14시간만에 구조 이행주씨/“천장만 봐도 콘크리트더미 연상 끔찍”
B동 지하1층에서 매몰 14시간만에 구조된 이행주씨는 아직까지도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씨는 『병원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봐도 머리위에 걸쳐져 있던 콘크리트 더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씨는 밤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 갇혀있는 악몽을 꾼다고 털어놓았다. 담당의료진은 그 때문에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고 조그만 일에도 자꾸 눈물을 흘린다고 전했다.
신체적인 고통도 심하다.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있던 오른발이 마비돼 여태껏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돼 손이 저리다. 혼자 걷기에는 아직 힘에 부쳐 부축해 줄 사람이 없으면 화장실에도 못간다. 나이든 사람처럼 눈이 갑자기 침침해 질때도 있다. 다행히 장기나 호흡기는 건강한 상태. 그래서 밥은 곧잘 먹는다.
현재 강남성모병원 일반병동에서 정형외과 치료를 주로 받고 있는 이씨는 부모님께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은 생업도 포기하고 이씨의 병수발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씨는 『예전에 살았던 아파트에서는 못살것 같다』며 『이제 다시는 직장생활도 하지 않을 것이고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박진용 기자>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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