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흥 통해 영향력확대 시도/사회간접자본 등 미지원에 손짓경제적 실리 앞에서는 과거의 적도 현재의 동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은 전쟁의 아픈 상흔을 깡그리 역사속에 던져버리고 인도차이나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적대국」미국과 거침없이 손을 잡았다. 한 나라의 외교정책은 이념과 같은 이상주의 보다 국가이익을 앞세운 철저한 현실주의에 입각해 이루어진다는 미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고전적인 외교이론이 베트남과 미국의 수교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베트남의 대미수교는 조만간 인도차이나의 실질적인 패권국가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복귀하겠다는 베트남 지도부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베트남의 현 지도부가 지난 86년부터 추진해온 도이 모이(개혁)정책은 피폐해진 경제를 상당부분 일으켜 세웠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베트남 경제는 도이 모이정책에 힘입어 연 7백%선까지 치솟았던 인플레가 지난해 14.4%로 떨어지고 수년동안 평균 9%의 높은 성장을 기록하는등 활력을 되찾고 있다. 또 미국 태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쌀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최하위인 2백30달러로 인접국인 태국의 1천8백달러, 말레이시아의 2천9백60달러등에 비하면 10분의 1수준이다. 결국 베트남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서두른 것은 인도차이나의 맹주로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재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미국의 자본과 기술을 절실히 필요로 했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은 오는 2000년까지 국민소득을 두배로 늘리고 취약한 기간산업과 공업을 현대화하는 한편 연간 경제성장률을 8%로 유지하기 위해 1백20억∼1백50억달러의 외국자본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도이 모이정책이후 화교를 앞세워 들어온 홍콩 싱가포르 타이완(대만) 등의 외국자본은 서비스와 소비재 산업에 치우쳐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라는 베트남의 목표에 부합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지도부는 소비재 산업의 유입보다는 유전개발 및 중화학공업육성, 낙후한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한 미국의 자본과 기술도입등이 시급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또 관계정상화와 동시에 최혜국대우를 받게되면 세계최대 시장인 미국에 봉제 및 석유제품과 장난감 신발등을 중국보다 더 많이 수출할 수있다는 기대도 베트남의 수교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기업이 들어올 경우 관망세를 보이던 일본이나 유럽국가들도 투자를 가속화 할 것이라는 점도 베트남이 노리는 부수효과였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수교에 이어 오는 28일에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 가입할 예정이어서 「동남아의 강대국」이라는 옛 명성을 뒤찾으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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