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며칠이죠… 벌써 그렇게”/“나 여기 더 있으면 안될까요” 농담도/“이름묻자 발가락으로 명찰밀어”/“잠 많이자 … 배고픔 별로 못느껴”/“내나이 어려 구조대아저씨완 데이트 못해요” 여유유지환(18)양이 발견돼서 구조될 때까지 119구조대원 최수재(30)씨와 1시간여동안 나눈 지상―지하의 대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대화대용은 유양이 얼마나 침착한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최:『이름이 뭡니까?』
유:『유지환이에요』
최:『안들립니다. 크게 말씀해주세요』
유양은 몇번 외치다 자신의 명찰을 그동안의 작업으로 뚫어진 구멍틈새로 밀어 밖으로 내보냈고 최씨는 이를 받아 신원을 확인했다.
최:『주위에 다른 생존자가 또 있습니까』
유:『잘모르겠어요. 밖에 비가 오고 있어요?』
최:『지금은 안오는데 아까는 많이 왔습니다. 그동안 뭘 먹으며 지냈습니까?』
유:『떨어지는 빗물로 입을 축였고 잠을 특히 많이 잤습니다. 지금 며칠이죠?』
최:『11일이에요』
유:『벌써 그렇게 지났어요…』
유양은 손가락으로 하나둘 날짜를 세어보더니 『시일이 이렇게 오래 걸리도록 왜 여태껏 구조를 하지 못했습니까?』라면서 『나 여기 더있으면 안될까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최:『지상 5층부터 파내려 오다보니 지하층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나가면 가장 먼저 뭘하고 싶습니까?』
유:『냉커피를 먹고싶어요』(웃음)
최:『부모님을 만나봐야지 않겠어요?』
유:『보고싶지만 아버지가 대한병원에 입원중이고 어머니도 그곳에 계세요. 병원으로 찾아가야 할텐데…. 참 발에다 물좀 부어주세요. 그동안 움직이지 못해 발쪽이 많이 간지러워요』
최:『배가 안고팠습니까. 불안하지는 않았습니까?』
유:『배고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어요. 굴착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와 구조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구조가 늦어져 답답했어요』
최:『밑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유:『누워있는 자세로 머리쪽이 낮고 오른팔은 움직일 수가 없지만 왼팔쪽은 약간 공간이 있어요. 오래 누워있는 바람에 허리에 통증이 있고 다른곳은 괜찮은 것 같아요』
최:『건강이 회복되면 구조대원 아저씨들하고 데이트 하면 안될까요?』
유:『내가 나이가 어려서 아저씨들하고 데이트는 안되겠네요』
최:『곧 나가게 됩니다. 얼굴을 가려야하니 수건을 꼭 잡아주세요』<박진용 기자>박진용>
◎어떻게 생존 가능했나/곁에 환기통 신선한 공기 마셔/상처적고 충분한 수면도 한몫
기적의 재현은 동일한 조건에서 가능했다. 유지환(18)양이 13일동안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9일 구조된 최명석(20)군의 경우처럼 적당한 공간, 그 틈새로 유입된 공기,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점등 때문이었다.
유양은 붕괴당시 지하1층 중앙부 에스컬레이터 옆으로 환기통이 무너지면서 만든 작은 공간에 갖혀 있었다. 최군이 구조된 곳에서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4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높이 30∼40㎝ 가로 1.3m 세로 1.5m 가량의 1.5평 정도에 불과했지만 근육의 위축을 막아주고 신진대사를 가능케한 생존공간이었다.
또 환기통은 유양이 사고직후 석면등이 타면서 내뿜는 유독가스의 해를 입지 않고 비교적 신선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게해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유양이 약간의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중상을 입지않았다는 점도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사고 초기 생존해 있다 구조가 늦어져 숨진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중상으로 인한 출혈로 숨졌다.
유양의 생존에 불가사의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유양이 보도진들과의 인터뷰에서 『물에 녹이 스며들어 마시면 죽을 것 같아 단지 입만 축였다』고 말한 점이다. 외국의 경우 한 어린이가 18일간 물을 마시지 않고 생존한 기록이 기네스북에 올라있긴 하지만 이는 매우 특이한 경우로서 과연 유양이 한모금도 물을 마시지 않았는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혹독한 조건에서 유양이 살아난 가장 큰 요인은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유양은 구조직후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가능한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고 말했다. 서울대의대 유태우 교수는 이를 「성격상의 내성」이라고 분석했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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